매일신문

[야고부] 이재명의 ‘더블스피크’

정경훈 논설위원
정경훈 논설위원

미국 영어교사협회는 1974년부터 매년 "전혀 믿을 수 없는, 회피적인, 완곡한, 혼란스러운, 혹은 자기중심적인 언어"를 구사한 공직자에게 '더블스피크(doublespeak)상'을 준다. 첫 수상자는 1974년 캄보디아 주재 미 공군 공보담당관 데이비드 오퍼 대령으로, '폭격'을 '공중 지원'이라고 했다.

이후 수상자들의 '더블스피크'는 더욱 가관이었다. 1984년 수상자는 미 국방부였는데 '전투'를 '난폭한 행진', 전투 중 민간인 사상자를 '부수적 피해', 1983년 중미의 그레나다 침공을 '동트기 전 수직 개입'이라고 했다. 2004년 수상자는 부시 행정부였다. 미군이 이라크 아부 그라이부 교도소에서 포로를 고문한 사건에 대해 당시 도널드 럼스펠드 국방장관이 '인간이 겪는 인성의 월권'(the excesses of human nature that humanity suffers)이라는 기상천외한 표현을 쓴 공로(?)다.

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의 더블스피크도 수준급이다. 그는 백악관 인턴 모니카 르윈스키와의 추문(醜問)을 인정하면서 '부적절한 관계를 가졌다'고 표현했다. 이에 대해 저명한 부흥 목사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부적절한 관계'라는 말은 부적절한 표현"이라며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게 아니라 간통을 저질렀다"고 일갈했다.

문재인 정권의 더블스피크도 막상막하다. 2019년 5월 4일 북한이 단거리 탄도미사일과 300㎜ 신형 방사포를 발사했을 때 군 당국은 처음에는 '미사일'이라고 했다가 곧바로 '단거리 발사체' '전술 유도 무기'라고 번복했다. 북한을 보호하려는 말장난이었다. 탄도미사일이라고 하면 북한이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측이 이 후보가 국민이 반대하면 안 하겠다고 한 국토보유세를 '토지이익배당금제'로 이름을 바꿔 재추진하겠다고 한다. 국토보유세가 소득을 재분배하자는 것인데 '세금'이란 이름 때문에 증세하는 것처럼 오해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후보는 거꾸로 말한다. 원래는 토지배당제인데 국토보유세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 역시 전형적인 더블스피크다. 국토보유세든 토지이익배당금제이건 국민에게서 세금을 탈탈 터는 국가 폭력임은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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