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슈라프 가니(72) 전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이 해외 도피 4개월 만에 입을 열었다.
그는 자신이 미국과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조직 탈레반 사이 협상의 '희생양'이었으며, 수도 카불 함락 직전 해외로 도피한 것은 도시 파괴를 막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변명'은 정부 붕괴 이후 심각한 경제난과 인권 탄압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민들의 분노를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
가니 전 대통령은 30일(현지시간) 영국 라디오방송 BBC4에 출연해 닉 카터 전 영국 국방참모총장과 인터뷰했다. 지난 8월 15일 탈레반이 아프간 수도 카불을 점령하자 돌연 해외로 도피한지 넉 달 만에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
현재 아랍에미리트(UAE)에 머물고 있는 그는 "카불을 떠나는 당일 오후까지도 아프간을 떠나는 건 생각도 못했다"고 주장했다. 당초 탈레반이 카불에 진입하지 않기로 합의했지만, 두 시간도 안돼 약속을 깨고 두 개의 정파가 다른 방향에서 들어오면서 계획이 수정됐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만일 두 정파간 대규모 충돌이 발생할 경우 도시가 파괴되고, 500만 명의 시민들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이 큰 상황인 만큼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가니 전 대통령은 당초 반(反) 탈레반 병력이 주둔해 있던 남동부 코스트주(州)로 갈 준비를 했지만, 이곳이 탈레반에 함락됐다는 소식을 듣고 어디로 가야 할지 전혀 몰랐다고도 설명했다. 또 "비행기가 이륙하고서야 아프간을 떠난다는 게 분명해졌다. 이 모든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일어났다"고 해명했다.

미국의 도움으로 집권할 수 있었던 그는 아프간 붕괴의 책임을 미국에 돌렸다. 미국 정부가 탈레반과 직접 협상하면서 평화협상 대신 철수 절차를 진행했고, 이 과정에서 아프간 정부를 완전히 지워버렸다는 주장이다.
그는 "내가 평생 한 일이 무너지고 내 가치관이 짓밟혔다"며 "나는 희생양이 됐다"고 강조했다. 수천만 달러를 챙겨 달아났다는 의혹을 두고는 "어떤 돈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내가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나"라며 어떤 국제 조사든 환영한다고 밝혔다.
그의 해명에도 아프간 민심은 싸늘하기만 하다. 가니 전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해외도피가 일촉즉발이었던 아프간의 상황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는 여론이 팽배하다.
"죽을 때까지 싸우겠다"고 다짐해온 그가 갑자기 도주하면서 아프간은 극도의 혼란에 빠졌고, 평화적 정권 이양은 무산됐다.
게다가 탈레반 집권 이후 미국이 아프간 정부 외환 계좌를 동결하면서 현지 경제 상황은 그야말로 파탄에 빠진 상태다. 미국 등 해외에서도 아프간이 예상보다 더 빨리 무너지고 평화적 정권 교체를 위한 외교적 노력을 무산시킨 원흉으로 지목 받고 있다.
이날 그의 인터뷰는 아프간 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상에서 분노를 불러왔다. 하룬 라히미 전 아프간 아메리칸대 교수는 가니 전 대통령과 측근들을 '겁쟁이 반역자들'이고 일컬으며 "그의 인터뷰는 아프간 국민이 겪고 있는 불행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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