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부디 임인년은 희망적이기를

최두성 경북부장
최두성 경북부장

"부자 되세요"라는 새해 인사말이 선풍적인 인기를 끈 적이 있다. 한 카드회사 CF의 메인 카피였던 이 말은 당시 외환위기로 어려움에 놓인 사람들이 가장 이루고 싶은 소망을 표현했고 최고의 신년 덕담에 등극, 너 나 할 것 없이 퍼 날랐다.

금전적 부자가 되기 어려운 직업의 기자에게는 그다지 효험 없는 말이 분명했으나 IMF 구제금융의 암담했던 터널을 막 빠져나와 재도약을 꿈꾸기 시작하는 주위 분들에게 '마법의 주문'이 되길 바라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린 기억이 있다.

해가 바뀌면 늘 하는 연례행사가 새해 인사다. SNS가 삶의 주요 소통 채널이 되고선 더 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나누는 이벤트가 됐다. 다만, 정치인 등의 '목적성' 문자메시지 남발이 때론 불쾌감을 주는 등 공해(公害)처럼 여겨지나 그 역시 관심의 증거요, 특히 코로나19로 대면이 어려운 시기이니 부적절성은 따지지 않겠다.

새해 인사말 속엔 많은 것들이 함축돼 있다. 짧은 문장이나 사회적 분위기, 시대적 상황이 녹아 있다. 2000년대 초, '부자 되세요'는 당시 경제적 여건이 좋지 못해 어려워진 세태를 반영했고, 공감이 있었기에 역대 손꼽히는 인사말이 됐다.

'복 많이 받으세요' '가족의 화목과 건강을 기원합니다' 등 스테디셀러 같은 문구가 통상적이던 시절, "부자 돼라"는 인사말은 외환위기 후 돈이 없는 데서 비롯된 온갖 좌절과 비극을 경험하거나 목격한 이들에게 그 이전보다 노골적이고 현실적인 바람을 직접 드러낸 문구였다는 이후의 평가도 있다.

부자가 되고 싶은 새해 소망은 평범한 서민들의 새해 소원 1순위이니 지금도 위력적이다.

임인년(壬寅年)을 시작하는 즈음에 받은 새해 인사말의 주요 단어는 '건강'과 '극복' '일상으로의 복귀' 등으로 요약된다.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고통을 올해는 반드시 이겨내자는 바람을 담은 듯하다.

호랑이의 힘찬 기운으로 2022년을 시작했지만, 상황이 만만찮다. 일상 회복에 대한 희망과 좌절의 반복으로 지난해 심신을 지치게 한 코로나19의 기세가 올해도 여전하다.

'IMF는 이겼는데 코로나에는 졌다'는 자영업자의 절규는 그치지 않고 있다.

심각한 인플레이션과 각 정부의 막대한 부채 규모, 미국과 중국 등 강대국들 간의 갈등 양상, 유가·천연가스 등 주요 에너지가 상승, 탄소 배출 제로라는 기후 목표 등 나라 안팎에 수많은 위험 요인들도 도사리고 있다.

지난해, 10년 만의 최고치였던 물가 상승세가 올해는 더욱 심각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 등은 평범한 삶을 더욱 옥죌 요소들이다.

무엇보다 위협적인 건 '정치 리스크'다.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대통령 선거는 발 앞에 놓인 산적한 과제 해결은 물론 대한민국의 미래를 더 나음으로 이끌 터닝 포인트가 돼야 하지만 진행되는 선거 양상은 그렇지 못하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라는 비아냥거림 속에 '덜 나쁜 후보'에게 국운을 맡겨야 하는 상황이 되는 건 아닌지. 세간의 평가다.

그런들 어쩌겠는가. 누군가는 새 대통령이 될 것이고 우리는 그를 믿고 나아가야 한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오래전 정치가이자 철학자인 안토니오 그람시가 말하지 않았던가.

'민생' '공정과 상식의 회복' '더 좋은 대한민국' '불평등 완화'. 여야 대선 후보들이 내놓은 새해 인사말 키워드다. 부디 임인년은 희망적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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