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몸이 한 몸 되어 사랑 나누니 '부부 나무' 되었구나"
방종현의 짧은 시 '사랑나무 연리지(連理枝)'의 첫 구절이다.
한참 게을렀다. 오랜만에 수성못을 걷는다. 못의 한 모퉁이 서 있는 작은 나무판에 새겨진 이 시의 '몸'이란 말마디가 소환된다. 이 시의 화자는 '몸'을 메타포로 사랑을 노래한다.
몸과 마음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하는가는 동서양의 오래된 철학적 논쟁거리였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육체'는 '영혼'과 분리돼 사용되어왔다. 육체는 영혼을 가두고 있는 무덤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플라톤은 육체는 영혼을 더럽히는 불순물로 규정한다.
우리는 몸과 마음을 분리해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 이러한 견해는 근대철학자 데카르트에 의해 더욱 힘을 얻는다. 그는 마음은 생각하는 실체이지만, 몸은 일정한 장소를 차지하고 있는 물체와 같은 것으로 논증한다.
몸 따로 마음 따로. 몸은 이곳에 있어도 나의 마음은 딸이 있는 파리로 가 있다. 몸은 마음처럼 물리적으로 자유롭게 이동할 수 없다. 그러나 마음이 마치 무덤을 빠져나가듯이 몸을 벗어날 수 없다. 마치 기계인 몸 안에 마음이 유령처럼 들어앉아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몸을 떠난 마음도, 마음을 떠난 몸도 상상의 산물이다.
몸은 육체, 즉 고깃덩어리가 아니다. 몸은 마음 그 자체이다. 마음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몸으로 마치 사랑하듯이 표현할 수 없다. 마음이 아프면 몸이 아프고, 마음이 그리움에 차 있으면 몸도 그리움에 차 있다. 몸과 마음은 한 켤레의 구두와 같고, 동전의 양면과 같다.
습관적으로 다리를 꼬거나 머리를 매만지는 것도 마음이 확장되어 몸으로 표현된 것이다. 부끄럽거나 당황스러울 때 이미 몸으로 나타난다. 얼굴이 붉어지고 시선이 고정되지 않는다. 마음은 속일 수 있어도 몸은 속일 수 없다. 마음이 체현(體現)된 것이 몸이다. 이 체현이란 말을 영어로 'embody'로 표현한다. 참 재미있는 단어이다. 마음이 몸화(化)되는 것으로 이해해도 될 듯 싶다.
우리는 마음으로 무엇을 만나기 전에 눈으로 만난다. 보는 것은 마음이 아니라 몸이다. 관념으로서의 '사랑'은 볼 수 없다. 플라톤은 '향연'에서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사랑이 완전하고 영원한 사랑이라는 역설(逆說)을 역설(力說)한다. 하지만 사랑은 인식이 아니라 지각의 대상이다.
몸은 마음이고 인격이다. 몸은 단순한 쾌락의 도구가 아니다. 몸을 떠나 도망간 사랑은 이미 사랑이 아니다. 몸은 마음의 거푸집이다. 몸은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명징한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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