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문득 동네책방] <51> 경주 중앙시장의 '책방 나정'

경주 중앙시장 안에 자리잡은 역사서 전문 동네책방
한 평 남짓한 면적…열정과 면적이 비례하는 건 아냐
고수는 도처에 널렸다는 직업적 겸허함 매번 느껴

경주 중앙시장 안에 있는 역사서 전문 책방
경주 중앙시장 안에 있는 역사서 전문 책방 '책방 나정'. 김태진 기자

역사서 전문 동네책방, '책방 나정'은 역사마니아 이응윤 씨가 연 3년차 동네책방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시장책방이다. '경주시 금성로 295 중앙시장 8동 38호'가 책방 나정의 주소다. 지도앱으로 찾기보다는 중앙시장 상인들에게 묻는 편이 빠르다.

정말 작다. 지금까지 취재한 책방 중에서 가장 작다. 가로, 세로 2m나 될까. 사진을 어떤 구도에서 찍어도 한 컷에 전부 다 들어온다. 그럼에도 이 씨는 오랜 꿈을 실현한 것이라며 뿌듯해한다. 역사를 좋아하는 이가 연 책방이니 역사서 전문 책방이 된 건 당연했다. '나정'이라는 이름도 박혁거세의 탄생설화 우물에서 나온 것이었다.

역사마니아가 경주에 산다는 건 자연스럽다. 도록 등 자료를 구하기 쉬운 데다 역사의 현장과 함께 살아가기 때문이다. 87학번인 그도 1987년 처음 경주에 온 뒤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좁은 서가에 전쟁사가 반, 삼국유사 등 우리 역사가 반이다. 경주여행 안내서도 몇 권 보인다. 전쟁사가 많은 건 어찌보면 당연한 귀결이다. 전쟁은 인류 역사의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 승자로 살아남은 이들이 기록한 게 역사로 남았기 때문이다. 승자의 시각에서 자신이 이긴 싸움이니 얼마나 다이나믹한 무용담이었겠나. 그러니 역사는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실제로 역사의 평가는 뒤집히기 일쑤니까.

팟캐스트로 유명한 경주 출신 허진모 씨의 전쟁사를 비롯해 전쟁사의 베스트셀러 작가 임용한 박사의 책이 줄줄이 꽂혀 있다. 역사와 관련된 것이니 베스트셀러 '총균쇠'도 있다. 전쟁과 무기, 그리고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니 1시간은 훌쩍 지난다.

경주 중앙시장 안에 있는 역사서 전문 책방
경주 중앙시장 안에 있는 역사서 전문 책방 '책방 나정'. 김태진 기자

실제로 이곳을 찾는 이의 다수는 역사마니아들이라고 했다. 4050 남성들이 많다. 군대에서 축구한 얘기가 아님에도 그들과 대화를 시작하면 시간이 어떻게 간지 모를 정도로 흘러가있다고 했다. 매번 '고수는 도처에 널렸다'는 직업적 겸허함을 느끼며 늘 하나씩 배운다고 했다. 그러니까 이곳은, 무협지 방식으로 표현하자면 "길 가던 나그네요"하면서 자신의 기예를 측정하러 오는 시골의 작은 '객잔'에 가까웠다.

공간이 좁은 만큼 다루고 싶은 책도 선별해야 했다. '임진무쌍 황진'이나 김성한 작가의 역사소설 등을 들여놓고 싶지만 그러지 못한다. 손님에게 말로 추천하는 선에서 그친다고 했다. 그는 "입고를 기다리는 책들이 줄을 서 있다"고 했다.

그는 가장 많이 추천한 책으로 '신라는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전쟁 이후의 한국사', '신라의 통일 전쟁', '한국고대전쟁사' 등을 꼽았다.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은 통일신라가 원형이 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문득 궁금증이 일어 한국사능력시험 성적은 어떠냐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니, 아직 쳐본 적은 없지만 평균 이하일 것이라고 답한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를 종류별로 다 읽었지만 조선시대로 넘어가면서 어렵더라며 겸손해한다. 쉬는 날은 없다. 주차장은 중앙시장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경주 중앙시장 안에 있는 역사서 전문 책방
경주 중앙시장 안에 있는 역사서 전문 책방 '책방 나정'.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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