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요가 매트만큼의 세계

임수현 시인
임수현 시인

요가는 굉장히 솔직하게 자신을 보여주는 운동이다. 나에게 요가는 운동이라기보다 수양, 수련에 가깝다. 햇빛 비치는 창가에 요가 매트를 깔고 수카사나 자세(가부좌)로 앉아 손을 가볍게 무릎 위에 올린다. 내 속도에 맞춰 호흡을 고른다. 그 간단한 동작을 처음하던 날, 내 옆자리 앉은 사람들은 수저를 들어 올리듯 쉽게 수카사나 자세로 앉는데, 나는 아무리 해도 한쪽 무릎이 공중으로 뻣뻣하게 들려 끙끙거렸다. "안 되는데요"를 연발하던 요가 첫날의 굴욕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요가 도중 휴식을 취하는 동작이 있다. 힘든 동작 다음에 척추를 길게 늘여주며 흉곽부터 어깨뼈를 풀어주며 쉬어간다. 무릎을 꿇어앉은 상태에서 허벅지 사이에 엉덩이를 바짝 대고 허리를 세운 다음 숨을 내쉬면서 몸을 앞으로 굽혀 이마가 바닥에 닿게 하고, 손은 바닥으로 내려놓는 자세이다. 태아가 엄마의 자궁에서 쉬는 모습을 형상화한 자세라고 한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있으면 내가 나를 안아주는 것 같다. 내가 나와 가까워지는 일이 매트 위에서 조용하게 이뤄질 때 호흡은 날숨과 들숨 사이를 들락거리며 흉곽을 열고 뭉쳤던 마음을 편다.

나는 요가를 하면서도 곧장 딴 생각에 빠진다. 이를테면 '몸을 동그랗게 말면 나와 가까워진다'같은 문장이 떠오른다. 그러면 마음이 급해진다. (나중에 보면 이걸 왜 적었지 그럴 때도 많지만) 못 적어두면 휘발돼 영영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 안달이 난다. 잊지 않으려 입안에 넣고 굴리다 보면 동작을 놓친다. 선생님은 딴생각이 들면 굳이 밀어내려고 하지 말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라 한다. 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른 동작에 집중한다. 몸을 동그랗게 말고 무릎에서 가슴으로 이어지는 마음 가까이 귀를 묻는다. 몸을 말아 마음을 펴는 이 동작의 이름은 '차일드 자세'다. 삶의 크기와 부피는 서로 달라도 요가 매트 안에서는 누구나 겸손해진다. 각자의 요가 매트 위에서 자신만의 호흡으로 뻗는다.

나의 요가 선생님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하세요! 다른 사람처럼 하려고 억지로 무리하게 펼 필요 없어요. 뻗을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라고 한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의미 너머의 의미를 곱씹곤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그렇지 않은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거. 남이 얼마나 뻗었건 내 팔이 갈 수 있는 데까지 무리하지 않고 밀고 가는 거. 이건 어디에 대입해도 말이 되는 것 같다. 나의 세계가 요가 매트 안에서 굽혀지고, 펴지고, 뻗는 과장에서 나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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