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포시대의 암울함 속에 연애에 대한 대리충족 욕구는 더더욱 커지는 걸까. 최근 들어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이 예능의 새로운 트렌드로 부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솔로지옥'은 국내 예능프로그램 중 처음으로 넷플릭스 인기순위 5위를 기록했다.
◆지옥도도 천국인데 천국도는?
저게 우리나라가 맞나?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솔로지옥'은 부감으로 잡힌 무인도의 아름다운 풍광이 먼저 시선을 압도한다. '지옥도'라 이름 붙여졌지만 파란 파도와 눈부신 태양 아래 꾸려진 그곳은 코로나19의 장기화로 지친 시청자들에게는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천국 같은' 느낌을 준다. 게다가 무인도라고 하지만 아무 것도 없는 야생이 아니라, 그 한 공간을 하나의 글램핑 공간처럼 세트화한 면이 두드러진다.
물론 모든 것이 갖춰진 호텔식의 럭셔리한 침실이나 식당, 음식 같은 게 구비되어 있지는 않다. 남성과 여성이 나뉘어져 함께 잠을 자는 숙소는 글램핑 텐트처럼 깨끗하게 꾸려져 있긴 하지만 어쨌든 함께 여럿이 지내야 하는 공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로지옥'의 지옥도에는 곳곳에 마치 사진을 찍으면 그림이 될 것 같은 뷰 포인트가 마련돼 있고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존재한다. 제아무리 지옥도라도 출연자들을 블링블링하고 매력적으로 포착하기 위한 장치들을 세워놓은 것이다.
이런 공간에 한 명씩 등장하는 남녀 출연자들 역시 현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영화나 드라마 속에서 막 튀어나온 비주얼을 보여준다. 남자 출연자들은 하나 같이 헬스 트레이너를 방불케 하는 관리된 몸에 아이돌 혹은 영화배우 뺨치는 얼굴을 보여주고, 여자 출연자들은 청순한 이미지부터 섹스어필하는 이미지, 나아가 인형 같은 외모로 지옥도에 들어온다. 공간의 판타지에 인물의 판타지까지 더해지면서 '솔로지옥'은 현실감이 잘 느껴지지 않는 달달한 설렘을 만든다.
아마도 누군가를 만나 연애를 하고 나아가 결혼을 한다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너무나 버거운 일이 되어버린 솔로들에게 '솔로지옥'은 큰 부담 없이 빠져들 수 있는 판타지가 됐을 게다. 실제로 현실에서 '솔로지옥'을 경험하고 있는 현실이 아닌가. 하지만 저곳은, 심지어 지옥도라고 이름 붙여진 곳에서마저 설렘과 행복감이 피어난다.
이건 단지 솔로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기혼자라도 어딘가 일상에 지쳐버려 연애 감정 따위는 호사로 여겨지게 된 이들에게는 '솔로지옥'이라는 잠시 동안의 일탈이 너무나 가성비 높은 행복감으로 다가온다. 그런데 이게 지옥이라고? 그렇다면 그 곳에서 커플이 되면 함께 데이트를 떠나는 천국도는 도대체 얼마나 큰 판타지를 줄까.
실제로 상대를 지목해 1박 2일간 떠나는 천국도는 그 럭셔리함으로 지옥도를 진짜 지옥으로 여겨지게 만든다. 헬기를 타고 도착한 천국도는 어마어마한 스위트룸에 지옥도에서는 결코 먹어보지 못할 고급 음식과 샴페인은 물론이고, 개인 수영장, 피로를 풀어줄 마사지 등등으로 커플들을 매혹시킨다. 그 천국 같은 공간에 대한 매혹은 그래서 함께 간 커플에 대한 매력 또한 높여줄 수밖에 없다. 이곳을 경험하고 나면, 애초 괜찮게 보였던 지옥도가 왜 지옥도인가를 실감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단지 환경의 차이가 만드는 지옥만이 아니다. 자신이 마음을 표현했던 이성이 다른 누군가와 천국도로 떠나버렸을 때 홀로 남게 된 이에게 지옥도는 진짜 지옥이 된다.
◆섹스어필에서 연애 과몰입으로
그런데 이러한 커플과의 관계 속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심리적 코드들은 우리네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이 그간 익숙하게 반복해온 것들이다. 과거 SBS '짝' 같은 프로그램이 훨씬 현실 버전으로 커플 간에 벌어지는 심리적 갈등과 환희, 좌절 등을 다소 자극적인 수준으로까지 담아냈다면, 채널A '하트시그널'은 이 현실 버전을 마치 멜로드라마의 순간 같은 판타지 버전으로 그려낸 바 있다. 이 양극단의 흐름 사이에서 보면 '솔로지옥'이 추구하는 건 불편함이 가득한 현실 버전의 '짝'보다는 달달한 판타지로 채워진 '하트시그널'에 더 가깝다.
그런데 '하트시그널' 류의 심쿵 과몰입을 유발하는 멜로적 요소에 '솔로지옥'은 서구의 '투핫'같은 리얼리티쇼가 갖고 있는 자극적인 섹스어필의 요소를 더했다. 이것은 프로그램이 시작과 함께 프롤로그처럼 담아낸 영상 속에 바닷가에서 운동하는 근육질의 남성들과 누워 선탠하는 여성들의 몸을 스케치해 넣은 장면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장면은 여지없이 해당 프로그램의 썸네일과 포스터로 담겨져 시청자들의 시선을 잡아끈다. 우리네 시청자들이라면 더더욱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우리도 저 서구의 리얼리티쇼 같은 섹스어필을 담는 커플 매칭 프로그램을 보여주려는 것인가.
하지만 이런 노출 수위가 조금 높은 걸 빼고 나면 '솔로지옥'은 생각만큼 자극의 수위가 높지 않다. 15세 관람가로 설정된 것도 그런 이유다. 대신 우리에게 익숙한 커플 매칭 과정에서 벌어지는 남녀의 복잡하게 얽히는 심리가 시청자들을 점점 몰입하게 만든다. 하지만 살짝 살짝 보여주는 출연자들의 노출 수위는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의 시청자들도 호기심을 자아내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어찌 보면 우리 식의 커플 매칭 프로그램에 서구의 리얼리티쇼를 섞어 그 중간 정도의 수위를 만들어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넷플릭스 예능 첫 5위 기록
이런 전략적이고 영민한 선택 덕분일까. 지난 10일 미국 온라인 스트리밍 플랫폼 집계 사이트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솔로지옥'은 9일 넷플릭스 전 세계 TV쇼 부문에서 5위에 올랐다. 지난 3일 처음으로 10위권에 들면서 어딘가 반응이 심상찮았던 '솔로지옥'이었다.
결국 8일 전체 에피소드가 모두 공개되면서 순위가 급부상했다. 이날 '솔로지옥'은 홍콩·일본·모로코‧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싱가포르‧한국‧태국‧베트남에서 인기순위 1위에 올랐고, 미국과 영국에서도 각각 7위와 8위를 기록하며 10위권 내에 순위를 올렸다.
지금껏 넷플릭스에서 K드라마와 K무비가 급부상할 동안 K예능이 글로벌한 반응을 내지 못했던 건, 예능이라는 특성이 가진 국가별‧문화별 장벽이 높았기 때문이다. 드라마나 영화는 이미 장르같은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지대가 존재하지만, 예능은 저마다 웃음과 재미에 대한 코드와 정서가 다르다는 점에서 글로벌한 공감을 불러일으키기가 쉽지 않은 영역이다.
예를 들어 스탠드업 코미디 같은 장르는 그 문화의 저변이 넓은 미국에서는 큰 인기지만 우리를 포함한 동양권에는 그만한 몰입을 주지 못한다. 우리도 '박나래의 농염주의보'나 '유병재: B의 농담'과 같은 스탠드업 코미디를 시도해 괜찮은 반응을 얻었지만, 그것이 글로벌한 반향을 일으키진 못했다. 그나마 '범인은 바로 너'같은 아시아권에 팬덤이 존재하는 예능이 힘을 발휘한 정도였다.
이 관점에서 보면 '솔로지옥'이 거두고 있는 글로벌한 반응은 K예능으로서는 놀라운 성과가 아닐 수 없다. 다소 자극적인 코드들을 내세우고 있지만, 글로벌 시장에 익숙한 리얼리티쇼의 형식을 가져와 우리 식의 섬세하고 디테일한 커플 매칭 방식을 접목시키는 실험적인 방식으로 거둔 성과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처럼 최근 커플 매칭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오고 점점 더 섬세해지면서 시청자들의 과몰입을 부르는 현상이 환기시키는 현실의 씁쓸함도 빼놓을 수 없다. 우리에게 연애 같은 감정은 점점 더 저 판타지 속에서나 찾아지는 현실이 되어가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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