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시절이었던 1988년 서울올림픽은 기자에게 잊지 못할 두 장면을 남겼다. 하나는 굴렁쇠 소년이었다. 한 소년이 넓디넓은 운동장에서 홀로 굴렁쇠를 굴렸다. 시골에서 자란 기자에게 일상적이고 평범한 굴렁쇠에 내심 실망했다. '저게 뭐야?' 나이가 들어서야 화려함 대신 소박함, 채움 대신 비움, 군중 대신 단 한 명이 주는 의미가 다르게 다가왔다.
여자 양궁 개인전 시상식도 기억에 남는다. 개인전 금·은·동메달을 김수녕, 왕희경, 윤영숙 등 우리 선수들이 휩쓸었다. 시상대에 태극기가 3개나 걸렸다. 처음 보는 광경에 가슴 벅참과 놀람이 교차했다.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우리 민족이 왜 양궁을 잘하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했던 기억도 난다.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는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서울올림픽에서 금메달 12개로 종합 4위까지 올랐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과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 13개로 최다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 양궁, 사격, 태권도, 유도, 레슬링 등이 효자 종목이었다.
동계올림픽에서도 선전했다. 쇼트트랙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던 1992년 알베르빌올림픽 이후 많은 금메달을 이 종목에서 얻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과 2010년 밴쿠버올림픽에서 각각 금메달 6개를 획득했고, 4년 전 평창올림픽에서 금메달 5개로 종합 7위에 올랐다.
특정 종목을 집중 육성해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선수들을 키웠고, 이들이 올림픽에서 금메달 획득으로 국위 선양을 하는 시스템이었다. 메달을 획득하면 충분한 보상도 뒷받침됐다. 올림픽에서 세계 10위권의 스포츠 강국 명성을 유지한 비결이다.
이런 한국형 메달 획득 시스템이 종지부를 찍고 있다. 대한체육회는 2월 베이징동계올림픽 목표 메달을 1, 2개로 보고 있다. 쇼트트랙 대표 선수들이 사분오열돼 있고, 주력 선수들의 부상도 한몫했다. 스켈레톤 등 평창올림픽 금메달 종목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가 쉽지 않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금 6개, 은 4개, 동 10개로 종합 순위 16위에 머물렀다. 1984년 LA올림픽 이후 37년 만에 가장 저조한 성적표다. 태권도·유도·레슬링 등 전통적 강세 종목을 비롯해 축구·야구·여자 골프 등 주요 구기 종목에서도 메달을 놓쳤다. 그나마 대회 초기 양궁에서 안산과 김제덕이 금메달을 획득하면서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었다.
도쿄올림픽에 이어 베이징동계올림픽마저 최악의 성적표를 받아 들 때 여론의 반응이 궁금하다. 도쿄올림픽의 경우 메달 획득보다 김제덕 등 젊은 선수들의 재기 발랄함에 큰 박수를 보냈다. 베이징올림픽에서도 도쿄만큼의 넉넉함을 보여줄 수 있을까?
개인적으로 회의적이다. 메달 색깔과 금메달 개수에 환호하는 스포츠 문화에서 갑작스런 성적 추락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
누구의 책임인가? 엘리트 스포츠 저변 축소가 가장 큰 문제다. 야구, 축구 등 일부 인기 스포츠를 제외한 비인기 엘리트 스포츠는 인원 맞추기도 쉽지 않다. 실례로 대구시 내 고교 농구팀은 계성고와 효성여고가 있다. 그렇지만 대회 출전 엔트리 맞추기도 어렵다고 한다. 부모들도 자식들에게 힘든 스포츠를 권하지 않는다.
자연스레 선수층이 얇아진다. 덩달아 올림픽 금메달도 쉽지 않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 최고가 아닌 최선에 박수를 보내는 스포츠 문화 조성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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