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다니던 시절, 지도교수님 댁에 놀러 갔다가 사모님께서 "아이고 어떻게 의대를 들어갔어요~장해라" 하시길래, 속으로 남편도 의산데 뭘 저렇게까지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나도 똑같다. 학생들을 보고 너희 정말 대단하다!고 은연중에 내뱉고는 머쓱해 하곤 한다. 예전보다 의대 입학이 훨씬 어려워지다 보니 성적이 좋으면 아까워서라도 의대 지원을 권유하는 게 요즘 학부모들의 현실인 것 같다.
영수는 입학 성적은 우수했지만 이후 6년 내내 성적이 바닥이었고 의사 국시를 앞두고는 고위험군에 들어 부학장 시절 내가 따로 면담했었던 학생이다. 원래는 서울대 수학과를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 권유로 의대를 왔다고 했다. 의사국시 대비 모의고사 성적이 대단히 부진한데도 불구하고 영수의 하루 일과는 이랬다. 오전은 수학 공부, 오후는 통계 공부, 저녁식사 이후 국시 공부. 나는 이 얘기를 듣고 국시가 코앞인데 수학 공부가 웬 말이냐며 싫은 소리를 했었다. 동기들한테 들은 영수는 의대 학생 실습 때도 쉬는 시간만 나면 수학 문제와 씨름한다고 들었다. 모두들, "교수님, 영수는 천재 같아요. 의대에 있긴 아까워요"라고 입을 모았다. 의대 공부는 양이 많기 때문에 머리가 좋다고 잘할 수 있는 건 아닌지라, 나는 그런 영수가 걱정스러웠고 그 뒤에도 몇 번 만나 국시 공부에 매진할 것을 채근했었다.
영수는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결국 의사 국시에 합격했다. 졸업식 날 따로 찾은 영수는 부모님 앞에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의대에 오긴 했지만 6년 내내 전 한순간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젠 제가 하고 싶은 걸 하려구요. 부모님도 이제는 이해해 주세요"
영수는 다른 동기들처럼 인턴 과정을 지원한 게 아니라 소위 우리나라 빅3병원의 의공학과 연구원을 지원했다. 의학과 수학을 접목하겠다는 야무진 포부였다. 나는 아마 몇 년 뒤면 니 몸값이 금값이 될 거라며, 열심히 해서 금의환향하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아들을 바라보는 부모님의 눈가엔 눈물이 맺혔지만 나는 영수의 미소가 그렇게 눈부신 줄 처음 알았다. 그 뒤에 몇 번 연락한 영수는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한 사람이었다. 매일이 신나고 재미있다고 했다. 영수의 목소리가 행복해서 나도 행복했다.
시대별 성공의 법칙이 있단다. 70년대에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성공하고 80년대에는 정보가 많은 사람이 성공했지만 이제는 즐기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나는 그 말에 100% 동의한다. 지금 세상엔 예전에 존재하던 공식은 없다. 인터넷 방송이 직업이 되고, 가상 화폐가 진짜 화폐보다 더 큰 가치를 가지는 세상이다. 내 학창 시절, 기준!을 외치던 사람은 운동장 맨 한가운데 서있는 단 한 명이었지만 지금은 모든 사람이 각자의 세상에서 기준이 된다. 그러니 청년들이여, 이미 난 오래된 길에 그대들의 젊은 발자국을 덧얹지 말고, 당신들의 길을, 당신들의 색깔을 이 세상에 새겨라. 그리고, 그 길 위에서 행복해라. Bravo, my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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