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브랜드의 명암

서종철 논설위원
서종철 논설위원

2차대전 이후 유일하게 선진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은 압축 성장의 속도만큼 각 분야 변화의 폭도 크다. 특히 '모자란 것은 참아도 느린 것은 못 참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만큼 기민한 일 처리가 미덕으로 자리 잡았다. 빠르기만 해서도 곤란하다. 정확도가 떨어지면 책잡히기 딱 좋은 사회 분위기다.

특히 최근 전국의 재개발·재건축 현장은 F1 경기장에 비견될 정도다. 대구만 해도 무려 100곳 넘게 아파트 단지가 신축 중이거나 계획 중인데 도시 스카이라인이 확 달라지는 건 시간문제다.

이런 변신에는 이미 입주가 끝난 아파트도 빠지지 않는다. 2~3년 전부터 아파트 개명 작업이 대구에서 유행처럼 번졌다. 특히 공공·임대아파트에서 이미지 개선을 위해 이름을 바꾸는 사례가 잇따랐다. 상품 가치가 나쁘지 않는데도 부동산 시장에서 저평가된다는 이유로 브랜드 변신을 추진한 아파트 단지들이 한두 곳이 아니다. '청라 센트럴파크'나 '대구역 서희스타힐스' 등은 브랜드 바꾸기의 대표 사례다. '대곡역 청구아파트'나 '수목원 삼성래미안' 등 입지 조건을 앞세운 브랜드 특화 사례도 있다. 소유주 75% 이상의 동의로 시행사·시공사 허락을 받아 명칭 변경이 가능하다.

지난 11일 발생한 광주시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사고는 이 같은 사회상이 고스란히 투영된 현장이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고 원인만 봐도 시공사인 현대산업개발의 심각한 안전 불감증과 과도한 공기 단축의 나쁜 사례로 꼽힐 만하다. 이런 이유로 '아이파크' 브랜드를 기피하는 현상마저 두드러진다. 시공사에 대한 불신과 아파트값 하락을 우려하는 입주민과 계약자들이 아이파크 명칭 변경을 요구하거나 계약 해지, 시공사 교체를 주장하며 집단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빠름은 때로 편리하고 효율적이다. 하지만 빠름이 늘 행복과 만족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이제는 조금 늦더라도 구태여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여유롭게 세상을 바라볼 때가 됐다. 그게 선진국 국민이 갖춰야 할 기본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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