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통치자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섬기는 것이다."
2017년 개봉된 영화 '더 포스트'. 미국의 정론지 워싱턴포스트를 줄인 말이다. 왜 명감독인가를 여지없이 보여준 스티븐 스필버그의 뛰어난 연출과 서사 전개는 영화를 보는 116분의 시간을 잊게 만든다. 워싱턴포스트 여성 소유주로 분한 메릴 스트립의 노숙한 명연기에 톰 행크스의 명품 연기가 가미돼 보는 맛을 더했던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자막이 앞서 소개한 문구다. 미국 대법원의 판결문이다. 대놓고 정권 홍위병을 자처하는 한국의 김명수 대법원에서 이런 판결문을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할까.
"간원이 일정 기간 조정의 잘못을 논박하지 않으면 처벌받았다."
간원이 일하는 사간원(司諫院)은 조선 태종 2년 1402년에 설치됐다.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에 확정된 구성을 보면 정3품의 대사간, 종3품의 사간, 정5품의 헌납 각 1명에 정6품의 정언 2명을 뒀다. 임금과 조정의 잘못을 간하고, 잘못이 큰 관리 탄핵 요구권에다 조정 인사에 대한 평가, 법률 제정 논의 참여, 정5품 이하 관리 인사에 서명하는 서경권(署經權)까지 행사했다. 요즘으로 치면 국영 언론기관이자 감사원을 뛰어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했다. 그런 만큼 간원은 학문이 뛰어나고, 인품이 강직한 사람 가운데 선발했다. 근무 중인 낮 시간에 음주를 해도 제재를 받지 않았으니, 지금은 사라진 언론사 기자들 낮술 문화의 기원이라고 할까. 물론 조선에 앞서 고려시대 중서문하성의 낭사와 어사대에서도 이런 언관 역할이 있었으며, 그 기원은 중국 진시황의 진나라와 한나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나라 이후 중국과 우리의 고려, 조선의 기본 통치 이념은 민본 사상에 뿌리를 둔 왕도 정치 구현이었다. 그러려면 왕이 도를 넘어 전제군주로 가는 것을 막아야 했다. 왕권 견제, 권력 견제가 도학 정치의 필수 조건이다. 이 역할을 사간원이라는 국립 언론기관 간원들이 맡았던 것이다. 놀라운 점은 간원들이 오랫동안 왕과 조정의 잘못을 간하지 않으면 오히려 처벌받은 점이다. 이를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공적 소유 구조인 공영방송 기자들이 오랫동안 대통령이나 집권당 비판 뉴스를 내보내지 않으면 처벌받는다는 의미다.
MBC의 김건희 녹취록 보도 역풍 논란이 뜨겁다. 만든 지 한 달 동안 200여 명에 불과하던 김건희 팬카페 회원이 방송 이후 하루에 1만 명씩 늘어 20일 현재 4만 명에 이르렀다. 정작 대선 후보 윤석열 팬카페 1만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MBC 보도를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정확히 읽힌다. 진중권은 MBC가 공정한 언론이라면 이재명 후보와 부인 김혜경 씨 녹음테이프를 함께 틀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물론 MBC에는 '소귀에 경 읽기'다. 이미 건전한 공영방송으로 공정성은 물론 판단력마저 상실한 MBC에 대해 강준만은 'MBC, 이게 방송 민주화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MBC의 김건희 녹음 파일 보도를 '선택적 공익'이라면서 공익적 가치가 매우 큰 대장동에 그런 열의를 보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언론은 통치자가 아닌 국민을 섬기는 것이고, 그 출발은 현재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다. 권력과 대립하는 야당의 대선 후보 부인을 검증하는 것은 부차적이다. 낮술 마시는 호기를 부리면서도 왕과 조정을 견제, 비판했던 사간원 간원들이 어용 공영방송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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