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중대재해법 1호로 찍힐라"…작업 멈추고 안전진단 분주

대구 산업계 중대재해법 긴장…건설업계 "철저히 준비해도 사고 위험, 당분간 작업 중지 사업장도"
작업중지 얘기 나오는 건설업계…“설 연휴 이후 한 주 더 쉬겠다”
“지금까지 괜찮았어도 혹시나”…안전진단 받는 차부품사

대구 동구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 걸린 안전 표지판. 김재성 인턴기자
대구 동구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 걸린 안전 표지판. 김재성 인턴기자

27일 시행되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앞두고 대구 산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자칫 '법 적용 1호'가 돼 전국적인 주목을 받으면 처벌은 물론, 회사의 이미지 타격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업종 특성상 안전사고 위험이 큰 건설업계와 지역산업 버팀목인 차부품업계의 걱정은 더욱 크다. 지역 업계는 산업재해를 줄이고 안전한 현장을 만드는 방향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중대재해법이 사고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했다.

◆건설업계, 작업중지 감행

지역 건설업계는 시범사례가 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눈치보기가 한창이다. 27일부터 설 명절을 지나 2월 둘째 주까지 2주가량 쉬겠다는 사업장도 나오고 있다.

지난 20일 오후 찾은 대구 동구 한 아파트 신축 현장 곳곳에는 안전 문구가 적힌 표지판과 현수막이 설치돼 있었다. 공사 현장은 추운 날씨 탓에 콘크리트 양생 온도를 맞추기 위해 쳐놓은 천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사무소 직원들은 하루에도 수차례씩 순찰을 나가 안전수칙이 잘 지켜지는지 점검한다고 했다.

이곳 현장소장 A씨는 "평소대로 하지만 아무래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며 "철저히 막아도 사고가 나는 걸 모두 막을 수는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분간 작업을 중지하겠다는 곳도 나온다"고 말했다.

이 현장은 공사 중 사고가 생길 것을 우려해 비상구를 동마다 설치했다. 비상구는 초록색과 빨간색으로 구분해 표시하고, 소화 시설을 구비했다. 내부 또한 철 기둥과 두꺼운 콘크리트 기둥으로 단단하게 받친 상태였다.

건물 계단과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공간, 바깥으로 난 방의 창에는 10㎝ 미만의 유격을 둔 추락 방지망이 설치돼 있었다.

A씨는 "이렇게 철저히 준비해도 사고가 난다"며 "할 수 있는 조치를 모두 했는데 사고가 난다면 대체 과실은 누구한테 있는 건가"라고 되물었다.

이곳 현장에 매일 출근하는 근로자는 평균적으로 350여 명이다. 이들은 사측의 안전교육을 받고, 안전요원 감독 아래 일을 하지만 이따금 크고 작은 사고가 난다고 했다. 공사 현장에서는 계속해서 자재가 반입되는 등 안전사고와 관련한 변수가 많기 때문이다.

A씨는 "준비하지 않은 것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데 그 이상으로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모르겠다"며 "교통사고로 비유하면 도로를 만든 회사가 운전자 과실까지 책임지게 된 것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사무소에는 안전관리와 관련된 서류부터 각종 업무로 처리해야 할 문서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이곳 현장은 이틀 전에도 시청과 구청의 점검이 있었다.

건설사 관계자는 "국토관리청, 고용노동부 등 모든 점검을 거쳤음에도 사고가 발생하면 한쪽이 모든 책임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 중대재해법을 앞두고 건설사가 마주한 고민"이라고 했다.

대구 동구 한 아파트 건설현장 내부에 설치된 추락 방지망. 김재성 인턴기자
대구 동구 한 아파트 건설현장 내부에 설치된 추락 방지망. 김재성 인턴기자

◆안전진단 받는 차부품사

대구지역 산업을 떠받치고 있는 차부품업계도 긴장감이 역력하다. 지난 21일 오후 성서공단 한 차부품사는 중대재해법 시행을 앞두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이 업체 관계자 B씨는 "여태까지 사망자가 나온 사고는 없었다. 안전 설비가 열악한 업체라면 몰라도 중대재해법 적용을 받는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말했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건설 현장과는 사뭇 분위기가 달랐지만, 혹시나 모를 가능성에는 철저히 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 업체는 중대재해법을 따로 관리할 팀을 신설하고, 외부 전문기관에 의뢰해 안전진단을 받았다. 이곳은 법 발의 이전에도 노조와 합동으로 시설 점검을 하고 경영진이 직접 주관해 동·하절기, 연휴 대비 특별점검 등을 진행했다.

다만 처벌을 강화해 사고를 줄이자는 중대재해법의 취지에는 동의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나타냈다.

B씨는 "사고가 나서 경영자가 처벌을 받는다고 해도 본질적인 문제가 해결될까 하는 생각도 있다"며 "안전관리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달리 중소·중견기업은 안전관리 여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B씨는 "중대재해법 시행으로 실무자의 업무 부담만 커진 측면도 있다. 안전에 신경 써야 할 주체인 근로자 입장에선 법이 시행되더라도 직접적인 불이익이 없기 때문에 행동이나 의식을 변화시킬 동기가 부족한 것도 문제"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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