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겨울은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던 것 같다. 하지만 즐거웠던 추억이 하나둘 떠오른다. 눈이 내리면 눈사람을 만들고 동네 아이들과 눈싸움도 했다. 꽁꽁 언 냇가에서 스케이트를 타기도 했다. 추위에 연신 발을 동동 구르고 장갑과 양말이 물에 젖어 손발이 벌겋게 부어올라도 노는데 정신이 없었다.
겨울과 관련 있는 기악곡을 꼽으면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이 떠오른다. 비발디의 '사계'는 본래 '화성과 창의의 시도'(Op.8)라는 열두 곡 중 첫 번째부터 네 번째까지의 곡을 일컫는다. 이 곡은 한 대의 바이올린과 통주저음(화음을 곁들인 반주)을 포함한 현악5부의 독주협주곡으로 곡마다 빠름-느림-빠름의 세 개 악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곡의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1678~1741)는 베네치아에서 바이올리니스트이자 작곡가와 음악교사, 그리고 사제로 활동했다. 그는 붉은 머리카락 색깔 때문에 '빨간 머리 사제'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그는 열다섯 살이 되던 해에 수도원에 들어갔는데 건강문제로 출퇴근을 하도록 허락받았다. 이즈음 산마르코 성당 바이올리니스트인 아버지에게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스물다섯 살 때 사제 서품을 받았으나 사제로서의 직무보다 건강을 핑계삼아 바이올린 연주에 몰두했다. 당국에서는 그를 베네치아에 있는 소녀 고아원 피에타의 음악 교사로 임명했다. 이후 비발디는 무려 500여 곡의 협주곡을 작곡해 '협주곡의 왕'이라는 칭호를 얻게 되었다.
비발디의 '사계'가 유명한 이유는 무엇보다 사계절의 느낌을 기악곡으로 잘 묘사한 표제음악이라는 점이다. '표제음악'이란 이야기의 줄거리나 사상, 자연환경 등의 내용을 음악으로 표현한 기악곡으로 제목이 붙는다. '사계'는 곡마다 계절과 관련있는 14행의 정형시 소네트를 가지고 있는데 비발디 자신이 직접 썼다고 전해진다.
'겨울'의 제1악장 첫 부분에 "얼어붙은 눈 속의 추위에 떨고"라고 시작된다. 이 부분에서는 8분음을 두 개씩 같은 음을 튕기듯 연주하여 눈보라 속의 추위를 묘사한다. "무섭게 몰아치는 바람에"라고 적힌 부분에는 독주 바이올린이 빠르고 현란하게 하행하며 몰아치는 바람을 연상케 한다.
제2악장 소네트는 "따뜻한 난롯가에서 편안히 쉴 때 바깥은 비로 인해 흠뻑 젖는다"이다. 이 악장에서는 합주를 반주로 독주바이올린이 아름다운 선율을 매우 느리게 연주하는데 따뜻함과 평온함이 가득하다.
다시 빠른 속도의 제3악장 시작은 "얼음 위를 조심해서 천천히 걷는다. 그러나 미끄러져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 걷고 열심히 뛴다"이다. 8분음을 이용해 얼음 위를 조심스럽게 걷는 모습과 32분음의 단편적인 하행음계를 사용해 미끄러지는 장면을 표현한다. "문을 꼭 닫아도 차가운 겨울바람이 새어 들어온다"에서는 빠르고 현란한 독주바이올린의 선율과 강렬한 동음을 연주하는 합주악기가 서로 주고받으며 겨울의 세찬 바람을 묘사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모든 악기가 합주를 하면서 "이것이 겨울이다. 그렇지만 겨울이 주는 즐거움이 있다"라고 끝맺는다.
이번 겨울에는 어느 해보다 몸과 마음이 차갑게 느껴진다. 하지만 옛날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맞닥뜨려보자. 겨울에는 겨울만의 즐거움이 있다. 교포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나 클라라주미 강이 연주한 비발디의 '사계' 중 '겨울'을 들어보자.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대구시합창연합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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