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래가 나타났다. 지난주 훌라 멤버들과 떠난 동계수련회 둘째 날, 노을 지는 제주 앞바다에서였다. 처음엔 둘, 셋 정도 노닐더니 어느새 돌고래 70~80'명'(생명임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리가 아닌 명으로 표기)이 모여 한참을 여유롭게 헤엄쳤다. 이토록 경이로운 광경이라니. 바다의 물결처럼 당연하고 우아한 그 몸짓이 아름답고 고마웠다.
사실 동계수련회를 제주까지 간 데엔 사연이 있다. 연말에 '쓰레기'에 대한 프로젝트 영상 촬영차 제주를 갔다. 장소 물색에 난항을 겪던 우리는 돌고래 보호단체인 '핫핑크돌핀스'의 도움으로 로케이션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시놉시스에 필요한 장면들을 찍었지만, 시간에 쫓겨 말 그대로 '찍기만' 하고 후다닥 돌아온 게 못내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다시 찾은 제주에서 '핫핑크돌핀스'의 활동가이자 아나키스트인 조약골님과 조우하고, 돌고래를 보러 가지 않겠냐는 그의 제안에 큰 기대 없이 따라나섰다가 이처럼 뜻밖의 선물을 마주한 것이었다. 그곳엔 '제돌이'도 있었다. 2009년 제주 바다에서 불법으로 포획되어 돌고래쇼장에 팔려간 제돌이는 핫핑크돌핀스를 비롯한 많은 이의 돌고래 해방운동에 힘입어 2013년 자유를 되찾아 고향 바다로 돌아왔다고 한다. 등지느러미에 숫자 1번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제주남방큰돌고래 제돌이는 야생 방류 10년째가 되는 2022년에도 여전히 무리들과 함께 힘차게 헤엄치고 있었다.
무리 중 몸짓이 불편해 보이는 녀석도 보였다. 꼬리에 낚싯줄이 걸려 헤엄칠 때마다 꼬리를 털며 떼어내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자꾸만 살을 파고드는 낚싯줄은 강제 포획하지 않는 이상 제거해 줄 방도가 없다고 했다. 이 많은 낚싯줄이 다 어디서 오나 했는데, 우리 바로 옆에도 낚시하는 사람이 있었다. 같은 곳에 있지만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는 낚시꾼의 그 무심함에 분노가 일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곳엔 모든 걸 뒤덮는 벅찬 사랑이 있었으니까.
코로나19와 함께한 지 2년째다. 우리는 이 위기의 시대를 어떻게 '횡단'할 수 있을까. 맹렬히 효율만을 추구해 온 인간 중심적 사고에서 한 걸음 물러서 반성하는 논의와 실천을 어떻게 삶과 연결할 수 있을까. 인간의 행위가 자연을 파괴했다는 서사는 아무리 반성의 의미가 담겨 있더라도 냉소주의로 흐르거나 무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지에 대한 생각을 가로막는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없다. 그저 이런 문제와 기꺼이 함께해야 한다. 그들의 자유가 곧 우리의 자유임을 기억해야 하면서. 도나 해러웨이가 '트러블과 함께하기'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손상된 지구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나 이외 다른 복수종과 공유 가능한 세상을 만들기 위한 공동체를 꾸려가는 것밖에' 없다. 다만 이러한 '함께-거주하기'는 명령이 아니라, 경험되는 사랑의 발현으로만 가능하다. 재난의 시대를 건너는 지혜, 그건 다가올 순간을 기다리며 이 사랑을 계속하는 것뿐이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숙소 앞 바닷가에 내려가 쓰레기를 주웠다. 우리 다섯이 주운 건 겨우 양손이 할 수 있는 만큼이었다. 그걸로 바다를 깨끗하게 만들 순 없다. 하지만 함께할 순 있다.
다시 대구로 돌아와 신년 광장에 첫발을 내딛는다. 올해도 현장의 기록자이자 기획자로서의 소명을 계속해 나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부디 어딘가에 있는 동료 여러분들도 용기를 잃지 말고 계속해 나가시길 바란다.
돌고래는 '반드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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