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6> 노신사가 건넨 책 한 권

고산도서관 사서 김혜진

나태주 지음 / 시공사 펴냄
나태주 지음 / 시공사 펴냄

하루에도 수백 명의 이용자를 마주하는 공공도서관에서 일 하다보면 말 한 마디에도 마음을 다치거나 상처를 받는 날이 종종 있다. 그런 날은 보통 자료실에서 마음을 추스를 만한 내용의 책을 여러 권 골라 틈날 때마다 잠깐씩 읽기도 하고 퇴근길에 예쁜 꽃 한 다발을 사기도 한다.

몇 달 전 그 날도 그랬다. 보통은 신간도서코너로 발길이 가지만 그날따라 이용자들이 반납한 책들이 궁금했다. 수많은 책 중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네가 웃으니 세상도 웃고 지구도 웃겠다'. 이 시대의 청춘들, 나처럼 바쁘고 각박한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마음의 휴식을 주는 나태주 시인의 시집이었다. 제목을 읽는 것만으로도 절로 미소가 지어지며 마음이 따스해졌다. 그 날은 꽃을 사지 않고 집으로 향했다.

생각해 보면 시인의 책은 나에게 대단한 인연을 안겨주기도 했다. 십여 년 전 처음 발령받은 도서관의 새내기 사서 시절. 하루는 아이들 그림책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인자한 모습의 할아버지 한 분께서 자료실을 방문해 주셨다. "혼자 있으면 적적한데 집 앞에 도서관이 생겨 책도 보고 이렇게 말동무도 있어 너무 좋다"라고 하시며 거의 매일 도서관을 찾으셨다. 하루는 반납하려던 책을 나에게 건네며 말씀하시길, "내가 이 책을 다섯 번은 본 것 같아. 아가씨 같은 사람이 읽기에 딱 좋은 책인데…."

사실 주말에는 이용자가 많아 반납되는 책은 급하게 서가에 꽂기 바쁜데, 그날은 할아버지가 가시고 나서도 '아가씨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계속 귓가에 맴돌아 책을 한편에 챙겨 두었다. 일과를 마치고 책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태주 시인의 시집 '별이 있었네'였다.

나태주 지음 / 토담 펴냄
나태주 지음 / 토담 펴냄

여유가 있을 때마다 한 편 한 편을 읽으며 사람들이 꿈꾸고 사랑하는 마음에 대한 시인의 진솔한 생각과 느낌에 공감할 수 있었고, 누군가에 대한 애틋하고 절절한 감정은 가슴 한편을 아리게 할 정도였다. 책이 연체되는 걸 참 싫어하는 나인데, 반납일자가 한참을 지날 때까지도 책을 옆에 끼고 있었다.

우습게도 이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던 날 한 남자가 고백을 해 왔고 평생을 함께 하기로 약속했다. 책을 권해주셨던 할아버지는 그 후로 다시 뵐 수 없었고 이 책도 출판된 지 꽤 되어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사랑이 찾아왔던 그때 내 마음을 잘 그려내고 있는 책 속 시 한 편은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너도 그러냐> -나태주-

"나는 너 때문에 산다 /

밥을 먹어도 /

얼른 밥 먹고 너를 만나러 가야지 /

그러고 /

잠을 자도 /

얼른 날이 새어 너를 만나러 가야지 /

그런다… (중략)…

너도 나처럼 그러냐?"

김혜진 고산도서관 사서
김혜진 고산도서관 사서

김혜진 고산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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