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 국민의힘 당 대표는 지난달 한 방송에서 "단일화를 하는 안철수가 싫고 국민들을 그만 괴롭히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이 대표와 안철수 후보 사이에 묵은 감정이 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안 후보가 서울시장 보궐선거 전 공언한 양당 합당이 무산된 것도 감정싸움 때문이다.
안 후보는 사실 처음 진보 인사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2011년 안철수 교수는 "나는 현 집권 세력(한나라당)이 한국 사회에서 그 어떤 정치적 확장성을 가지는 것에 반대한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2012년 대선 당시에도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의 구호는 한나라당 후신인 새누리당의 확장성 반대였다. 여론조사 지지율 50%가 넘는 상황에서 서울시장을 박원순에게 양보한 것이나 문재인 민주당 후보를 지지하며 사퇴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이 대표는 과거 안 후보가 이처럼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문재인 대통령한테는 쉽게 양보하더니, 보수 쪽에 오면 요구 조건이 세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
2012년 대선, 2017년 대선, 2018년 서울시장 선거, 지난해 서울시장 보궐선거 그리고 올해 대선까지. 안 후보는 선거만 있으면 출마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도 계속 참전을 고집하고 있다. 그것도 이 대표의 말처럼 보수 쪽에 항상 합당이나 경선 참여를 하기 싫은데 선거는 이쪽에서 자꾸 끼어 보고 싶고 그러면 계속 단일화하자고 뒤늦게 나타나는 양상이 지속되고 있다. '프로 출마자' 안철수는 과거와 달리 이제는 늘 보수 쪽에 골치 아픈 '단일화' 숙제를 내는 존재가 된 것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눈 터지는 계가 바둑'이거나, 이전의 한국 축구처럼 마지막까지 '경우의 수'를 계산해야 하는 상황이다.
물론 현재는 야권 상황이 좋아지고 있다. 지난해 말과 올 초까지 추락하던 지지율이 윤석열 후보와 이 대표의 화해(?) 이후 상승 곡선을 타고 있다. 여론조사에서 윤 후보와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대체로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오차 범위를 벗어나 윤 후보가 앞서는 경우도 있다. 더 이상 국민의힘 내부 잡음이 나오지 않고, 김건희 씨 리스크는 거의 사라진 반면 새롭게 김혜경 씨 리스크가 커지고 있으며, 대선 후보 토론에서 선방했다는 평이 나오는 등 거칠게 없어 보인다. 그래서 네 후보가 모두 완주해도 윤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는 이 대표의 이른바 '신4자 필승론'에도 더 힘이 실리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그럴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1997년 DJP 연합과,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 단일화는 정파 연합 혹은 단일화를 통해 승리한 대표적인 경우이다. 피해자는 공교롭게도 두 번 다 보수 계열 후보인 이회창 후보였다. DJP 연합에 관여했던 인사의 말에 의하면 김종필 총재는 김대중 후보와 이회창 후보 사이에서 마지막까지 줄타기를 했다고 한다. 이 후보가 김 총재를 찾아가서 손을 잡았다면, 독자 출마한 이인제 후보를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2002년 역시 이 후보가 자신과 성향이 비슷한 정 후보와 함께했다면 지금 대한민국 상황은 많이 다를 게 분명하다. 많은 변수가 작용했겠지만 이회창 후보와 그 진영의 오만함이 주요 패인이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야권 후보 단일화'만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패색이 짙을 경우 민주당과 이재명 후보가 DJP 연합, 노·정 단일화 혹은 그보다 더한 깜짝 쇼도 벌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민전 교수의 말처럼 '홧김에 바람 피우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안 후보 역시 이번에는 정권교체를 기치로 선거에 나섰음을 기억해야 한다. 지난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지지율이 한참 뒤진 오세훈 시장이 결국 승리한 것은 안 후보와의 단일화 덕분이 아닌가. 양측 모두 사감을 잠시 밀어놓고 대의에 복무하는 정치인의 자세를 보여야 한다.
50%가 넘는 국민이 정권교체를 지지하는 상황은 선거에서 야권에 유리한 구도이다. 이런 국민의 열망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윤·안 두 후보는 물론 이 대표를 포함한 야권 전체의 정치적 미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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