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건강한 新꼰대

홍성구 경북도자치행정국장
홍성구 경북도자치행정국장

언젠가 인터넷에서 천 원짜리 사진과 함께 '초등학생인 아들이 천 원을 한참 보더니 퇴계 이황 선생 전화번호가 있다더라'는 게시물을 본 적이 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자세히 보니 그 초등학생이 퇴계 이황의 전화번호로 착각한 것은 선생이 태어난 해와 돌아가신 해를 적은 '1501-1570'라는 숫자.

작성자의 아들은 이 숫자가 광고에서 흔히 보는 전화번호와 비슷해 착각을 했던 것이다. 심각할 이유는 없다. 중독성 강한 멜로디의 대리운전 광고에 노출된 세상에서 1501-1570은 연락처 정도로 인식되기에 충분했다. 그만큼 우리 사고방식과 문화, 세상이 소용돌이치듯 빠르게 변하고 있다.

천 원권 지폐 속 인물인 퇴계 선생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선생이 학문을 펼친 우리 지역에서조차 관심이 부족한 형편이다. 그런 퇴계 선생을 제대로 알고 배울 기회가 생겼다. 지난 1월 말 이철우 도지사를 비롯한 간부 공무원, 공공기관장 등 60여 명과 함께 도산서원 선비문화수련원에서 퇴계 선생과 선비정신, 청렴 리더십을 배우고 체험했다.

블록체인과 인공지능, 메타버스 등 새로운 기술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선비'라는 말은 분명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심지어 요즘 일부에서 선비는 '꼰대'나 '예민충'처럼 일종의 멸칭 대상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에 배운 선비정신은 이와는 달랐다. 선비정신의 핵심은 어진 인품과 섬김, 배려와 같은 공감 능력이고 이것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역설적인 것은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인간 중심의 혁명이 되도록 하려면 결국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공감 능력과 인성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이다.

참선비, 퇴계의 공감 능력과 인성을 엿볼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한다.

9개월 남짓 단양군수로 재직하다 고향 안동으로 은퇴한 이야기는 큰 감동을 준다. 자신의 친형이 충청도 감사로 부임하자 한 고을에 형제가 직책을 맡으면 안 된다고 사직소를 올린 것이다. 선조가 말려도 퇴계는 고향으로 돌아가 스스로 정실을 경계하였다.

세상이 빠르게 디지털화되면서 행정환경 역시 급변하고 있다. 여기에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청렴 기대치, 1990년대생 MZ세대로 대표되는 조직문화 등 새로운 환경에서 그 변화의 출발점은 다름 아닌 섬김과 배려의 공감 능력이다.

경북도청도 민선 7기 들어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새집 짓기보다 어려운 것이 헌 집 고치기라 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 취임 이래 모든 공직자가 변해야 산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형식과 관례를 깨고 일하는 방식은 물론 유연하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다. 도지사부터 스스로 구두 대신 운동화를 신고 양복보다는 점퍼를 입는 등 형식보다는 실용을 중시했다. 화요일 새벽마다 전문가들과 공부하고, 연구 중심 혁신 도정으로 도정 운영의 틀을 변화시켰다. 각자 계산하고 전부 투명하게, '각개전투' 캠페인을 실천해 '밥 한 그릇쯤이야' 하는 관례를 과감히 파괴했다.

세상의 변화보다 더 빨리 변화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매일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건강한 공포'를 느껴야 한다. 그 건강한 공포를 어떻게 이겨낼까. 우리 스스로 퇴계처럼, 선비처럼 섬기고 배려하자. 비록 꼰대 소리를 듣더라도 퇴계의 인내와 친절, 겸손, 존중, 청렴, 관용을 본받고 싶다면 기꺼이 꼰대가 되자. 오늘 저녁 식사는 내 스스로 요리해서 욜로(YOLO)를 즐겨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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