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화분들

임수현 시인
임수현 시인

나는 화분을 잘 기르지 않는다. 아니 못 한다. 싱싱하던 화분들이 우리 집에만 오면 시들시들해지다 오래지 않아 모두 죽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다육이 정도는 가능하겠지"라고 웃으며 내밀던 작은 다육이조차 오래가지 못했으니 화초들과는 인연이 없다. 그런 줄 알면서도 봄이 되면 길가에 파는 작은 화분들 앞에 쪼그려 앉아 화분을 고른다. 싱싱한 화분이 죽은 화분이 있던 자리를 채운다.

'흙을 자주 만져보고, 창문을 열어 바람도 쐬게 하자!'

마음속에 다짐들을 차곡차곡 쌓는다. 처음에는 자주 나가 꽃들 상태를 살피고 영양제를 꽂아주는 등 관심을 쏟는다. 꽃을 보며 물을 마시다가도 남는 물은 꽃에 부어준다. "너도 많이 먹어!" 친절한 인사를 건네며.

그런데 뭐란 말인가 내 정성에도 불구하고 베고니아들은 시들시들 꽃잎을 떨구기 시작한다.

언젠가 이 얘기를 친구에게 했더니 마시던 물을 화분에 부어서 그렇다는 다소 황당한 얘기를 들려줬다. 목이 마르지도 않은 식물에 반쯤 남은 물을 자꾸 부어줬으니 뿌리가 썩은 거라고 오은영 박사처럼 말했다. 생각해보니 나의 반복적인 물 주기는 그런 식이었던 거 같다. 식물은 물을 안 줘서 죽는 경우보다 물을 너무 줘서 죽는 경우가 많다고.

죽어가는 식물을 보며 이건 내 탓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저씨, 이 꽃 잘 안 죽죠?" "네, 얘들은 햇빛만 잘 드는 데 두면 잘 커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나는 햇빛보다 물을 많이 줬고 그게 사랑이라고 착각했었다. 그냥 햇빛이 필요한 것뿐이었는데.

지나친 관심이나 사랑이 관계를 시들게 한다는 것. 가까운 사람이 더 많이 상처받고 상처 준다는 사실. 나는 화분을 기르면서 어렴풋하게 알게 되었다. 세상에 내 마음 같은 건 내 마음밖엔 없다.

때론 내 마음도 나를 속인다. 타인이 내 진의를 알아주면 고맙겠지만 몰라준다고 해도 슬퍼하거나 노여워 말자. 원래 삶이란 나 아닌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도록 설계되어 있으니까.

진은영 시인의 '가족'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밖에선/ 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 집에만 가져가면/ 꽃들이/ 화분이// 다 죽었다"

시의 전문이다. 어쩌면 밖에서는 한없이 아름답던 화분들이 집에만 오면 시드는 까닭은 내가 햇빛 대신 물을 너무 줘서가 아닐까. 나는 마시던 물컵을 내려놓고 햇빛 드는 창가 자리에 화분을 돌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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