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피소드로 읽는 전쟁 톡톡]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또 다른 이름, D-day

결전의 날을 앞두고 연합군 병사들이 함정에 올라 타고 있다.
결전의 날을 앞두고 연합군 병사들이 함정에 올라 타고 있다.

파리에 사는 지인이 예쁜 사진첩 한 권을 보내왔다. 아마추어 사진작가인 M. 오딜은 나를 위해 몇 장의 사진을 특별히 촬영했노라고 메모까지 덧붙였다. 노르망디 해변과 마르느 강둑은 물론 마지노 벙커와 아르덴느삼림 등 1,2차 세계전쟁의 격전지 사진들이었다.

지인은 전상으로 얼룩진 당시의 사진이 아니라 70여 년이 지난 지금, 노르망디 해안의 평화롭고 아름다운 삶의 현장을 자신의 담담한 시선으로 담았다.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해변을 걷는 연인의 모습, 모래성 쌓기 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표정 혹은 수많은 전사자들이 잠든 넓고 아득한 묘지 사진도 빼놓지 않았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달리 'D-day'라고 한다는 설명까지 붙인 그 사진첩 속의 풍경들은 금새 나의 평온을 뒤로 밀어내고 지축을 흔드는 화염을 쏟아냈다. 내 눈 앞에 포화로 얼룩진 노르망디 해안이 스쳐 지나갔다.

1944년 6월 5일, 도버해협의 푸른 물결은 여느 때와 같이 노르망디 해변으로 밀려들었다. 철썩철썩.....연합군사령관 아이젠하워 장군의 눈에 파도는 노도가 되어 출렁거렸다.

그는 단호했다.

"오버로드(Overlold) 작전은 계획대로 수행한다. 내일 여명기에 총공격 하라!!"

김정식

6일 새벽, 노르망디 해안은 독일의 방어선을 무력화 시키려는 함포사격에 이어 1만2천 대의 전투기가 까마귀 떼처럼 하늘을 메웠다. 아이젠하워와 몽고메리 장군이 이끄는 연합군의 함선 5천 척과 병력 16만 명이 프랑스에 발을 내려놓는 순간이었다.

이들은 롬멜이 이끄는 독일 B집단군과 맞섰다.

바다 가운데 대기하고 있던 수송선과 상륙하는 병사들 머리 위로 독일군의 포탄이 무차별하게 떨어졌다. 순식간에 불비가 쏟아져 내리고 붉은 핏빛 물기둥이 무지개를 그리며 솟구쳤다. 상륙작전의 중심이 된 오마하 해변은 마치 화산이 폭발하듯 분화구를 터뜨렸다. 비명과 총포 소리가 뒤섞인 노르망디 해안은 피와 모래톱이 범벅이 된 전사자들의 시체로 뒤덮인 채 분노의 파도에 휩싸였다.

독일은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연합군이 프랑스의 칼레 해안으로 상륙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영국에서 출발한 연합군은 가까운 칼레를 비켜 해안선이 길고 내륙 접근이 용이할 뿐만 아니라 독일의 방어벽이 느슨한 노르망디를 선택했다. 그리고 미영 캐나다 군이 각각 노르망디 서쪽으로부터 유타, 오마하, 골드, 주노, 스워드 해변에서 대대적인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미 육군 1사단장이 16연대장에게 'D-day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라!' 고 명령을 내리는 순간 그야말로 지상 최대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이 시작되었다.

1943년에 접어들자 독일, 이태리, 일본 등의 동맹국들의 맹위가 확산되어 나갔다. 거기에 저항하는 연합군은 독일의 점령지가 되어버린 프랑스를 중심으로 유럽대륙을 독립시켜야 한다는 하나의 공동 목표에 집중하고 있었다. 그 결과 미영은 노르망디 상륙작전, 오버로드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결국 피의 댓가로 얻어낸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제2차 세계대전의 향방을 결정짓게 된다.연합군은 프랑스의 독립과 아울러 독일 본토를 강타할 유럽 교두보를 확보한 반면 독일은 패전을 예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전후의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매우 다양한 영역에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다. 전쟁 역사상 최초의 상륙작전이라는 고유한 이름으로 뿐만 아니라 영화와 소설, 박물관의 이름과 그림의 소재로 다루어진다. 심지어 아이들의 장난감 레고로 만들어지는가 하면 기념주화를 남기기도 한다.

전쟁사의 획을 그어놓은 그 작전의 이름 또한 여러 가지로 사용되었다. 자칫 비밀이 누설될 것을 염려한 나머지 암호로 대신하였는데 오버로드 작전, 해왕성 혹은 넵툰 작전, 디데이(D-day)등이 그것이다.

그 가운데 우리들의 일상에 거부감이 없이 자주 사용되는 용어가 D-day다. 작전 수행시점 즉 공격 개시일을 뜻한다. 다분히 군사적이지만 그 출발과 달리 살짝 변신하여 세간의 상용어로 자리를 잡았다. 결국 디데이는 중요한 일이 벌어지는 날, 결전의 날, 행사일이란 뜻으로 자주 애용된다.

현재 전 세계인들이 분노하며 주목하고 있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급박한 격전 상황에서도 평화적 협상을 위한 디데이를 간절히 기대한다. 자랑스러운 대한민국호의 선장을 결정하는 날을 불과 몇일 남기고 있다. 그야말로 D-day 4일 전, 어느 때보다 디데이에 막중한 의미가 부여된다.

이렇듯 군사작전 용어 D-day가 시공을 넘어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자리 잡은 것도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위력일까?

김정식

김정식 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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