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규의 행복학교] 그대의 몸은 어디서 나왔는가

최경규

일상으로의 회복이 느려지는 시대, 예전보다 가정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고 있다. 이에 그동안 알지 못하였던 가족의 사랑을 느끼는 일들도 많아지고 있다. 각기 다른 일정 속에서 보내던 시간을 집이란 울타리 속에서 함께 아침밥을 먹고, 저녁이면 웃으며 드라마를 시청하기도 한다.

가물에 콩 나듯 하던 전화도 코로나로 혹 아프실까 자주 통화도 하고, 면역력이 중요하다며 비타민을 사보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세상일이 그렇듯, 그의 반대의 경우도 있다. 사춘기의 아이들, 심지어 대학 입학한 아이들조차 속을 태우며 매일 전쟁을 해야 하는 부모도 있다. 그렇기에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지에 대한 고민으로 상담을 요청하는 이도 많으며, 따로 서적을 구해 보며 더 나은 부모가 되도록 노력하기도 한다.

세상 무엇이든 일방적으로만 흘러서는 절대 답이 찾을 수 없다는 것이 내 지론이다. 즉 자식은 도리를 하지 않고, 예(禮)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부모만 책임을 다하는 것은 가뭄에 언제 비가 내릴지 기다리는, 애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힘든 마음일 수 있다. 어제도 재택치료를 하던 코로나 확진자인 60대 할머니가 귀천(歸天)하였다.

돌보아주는 사람이 없어 홀로 세상과 이별을 한 것이다. 생각보다 고독사하는 경우는 이제는 어렵지 않게 주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부하던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예와 효에 대하여 이렇게 무디어졌는지 궁금하다.

요즘 무엇이든 다 알려준다는 강의사이트를 방문해 본다. 어떻게 하면 좋은 부모가 될까에 대한 부모교육은 페이지를 넘길 정도로 차고 넘친다, 하지만 어떻게 부모를 잘 모실까에 대한 강의는 거의 없다. 심지어 유튜브에서도 효도, 공경에 대한 키워드로 검색을 해보아도 생각보다 자료는 많지 않다.

얼마 전 "당신에게서 부모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인가요?"라는 질문에 '내가 살아가는 이유이죠', '나의 전부입니다', '엄마는 널 위해서라면 내 심장도 다 줄 수 있어'라고 대답조차도 울먹이던 부모들이 생각난다. 이 말을 들었을 때 불현듯 명심보감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어린 자식의 똥오줌은 마음에 전혀 거리낌이 없으면서, 늙은 부모님의 눈물과 침이 떨어지면 도리어 미워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갖는데, 육척 그대의 몸은 어디서 나왔는가?" 그렇다. 집에 키우는 강아지가 혀로 얼굴을 핥아도 웃고, 똥오줌도 거리낌 없이 치우는 것을 볼 때 늙어가는 부모는 강아지보다 못하는 존재인지에 대한 씁쓸한 생각도 든다.

어제의 일이다. 일 년에 한두 번 오실까 말까 하는 아버님께서 집에 오셨다. 들어오시는 모습이 어쩐지 편하질 않다. 가만히 들어보니 오랜만에 오시는 길이라, 앞차와 작은 접촉사고가 있었던 것이다. 사고라고 할 것도 없이 브레이크가 조금 밀려 앞차와 닿은 것뿐인데, 젊은 여성 운전자는 화를 내면서 변상을 요구하였다.

놀란 아버지는 사진조차 한 장 찍지 않았고, 원하는 대로 해주니 여성과 동승자는 바로 병원으로 갔다고 한다. 사고가 났으면 보상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내가 가슴 아픈 일은 아버지가 늙으셨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떻게 사진 한 장 찍지 않을 수 있냐며, 보험회사 직원이 올 때까지는 기다려야 하지 않느냐고 답답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화를 내었나 보다. 이유는 그것이 대학 입학 후, 차를 사주시며 아버지께서 신신당부하며 일러주었던, 사고 이후 대처 매뉴얼이었기 때문이다. 십여 분이 지난 후 "나도 늙었는지 당황이 되니 내 전화번호까지도 기억이 나지 않더라"고 하신다.

경황없이 아직 가슴 두근거릴 아버지를 아들이 오히려 더 벼랑으로 몬 것이다. 차라리 냉수 한잔을 드리며 어디 다치신 곳은 없는지, 안아드리는 것이 도리이었음을 그러지 못하였다. 그리고 지난 30년 동안 크고 작은 사고를 내어도 말없이 나를 걱정해주시던 아버지였는데, 나라는 사람은 아직 멀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 반드시 행함이 있어야 한다. 눈으로 읽고 가슴으로 느끼더라도 행함이 없는 지식은 물과 기름과도 같다. 어제의 반성에 대하여 공자는 이렇게 내게 답한다.

부모유기질지우(父母唯其疾之憂), 즉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지 않을까 그것만을 걱정한다"라고 하였다. 또한, 논어에서 덧붙여 말하길, "부모의 잘못이 혹여 있을 때는 완곡하게 말씀을 드려야 하며, 부모님의 뜻을 따르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능하면 그 뜻을 어기지 말아야 한다. 또한, 자식은 화난 얼굴을 보이지 말아야 한다."

공자는 이미 2500년 전에 그의 제자들에게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말하였다. 세상이 변하더라도 절대 변하지 않는 법칙들이 있고 그 근본으로 세상은 지금껏 움직여왔다. 얼굴의 생김새와 성격은 다르지만, 우리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역시 같은 고민과 성찰을 통해 세상에서 왔다가 돌아가시었다.

삶이 마치 영원할 것만 같은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다시 하늘로 돌아갈 때 무엇을 가지고 갈 수 있을지 말이다. 세상과 하직하는 사람들에게 질문한 "무엇이 가장 후회되는가요?"라는 말에 대부분 사람의 대답은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이 표현하지 못하고 잘해주지 못한 것이었다.

우리의 조상들은 자식을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들이 심지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말이다. 비록 안아 줄 수는 없지만, 후손들이 더 행복하기를, 그래서 효(孝)를 더 강조하였다. 당신들을 더 잘 봉양하길 바라서가 아니다.

부모가 돌아가시고 난 후에 내 새끼들이 덜 힘들고 덜 괴로워하라고 효를 가르친 것이다.

최경규

행복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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