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헤라자드 사서의 별별책] <13>어떤 이의 생애 마지막 책

고산도서관 사서 정대광

소오강호(전8권)/ 김용 지음, 전정은 옮김/ 김영사 펴냄
소오강호(전8권)/ 김용 지음, 전정은 옮김/ 김영사 펴냄

도서관 사서들에게는 '연체자 관리'라는 중요한 임무가 있다. 피치 못할 사연 등으로 대출도서를 정해진 시일까지 반납하지 못한 이용자에게 책을 반납하도록 재차 상기시키는 게 연체자 관리의 주된 목적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중요한 임무인 연체자 관리 전화를 열심히 하던 어느날이었다. 평소 연락이 닿지 않던 어느 장기연체 이용자와의 연결이 드디어 성사되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뿐. 우리의 기대와 달리 전화가 연결된 이는 연체자 본인이 아니었다.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자신은 연체자와 가까이에 사는 지인인데, 연체자는 얼마 전 안타깝게 고인이 되셨고, 유품 정리를 도와주러 오셨다가 울리는 전화벨소리에 전화를 대신 받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우리가 애타게 찾던 책의 행방은 알 수 없다는 비보(?)도 함께 전해주었다.

고인이 마지막까지 읽고 계셨던 책은 '소오강호'라는 여덟 권으로 구성된 장편 무협소설이다. 그냥 보통의 무협소설이 아니라 '대하 역사 무협소설'이다. '무협소설계의 레전드'라고 할 수 있는 홍콩의 작가이자 언론인 김용의 대표작 중 하나다. '신필'이라고도 불리는 김용은 중국 소설사와 무협의 역사를 새로 썼다고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의 소설 중에서도 '소오강호'는 무협 소설 마니아들이 꼭 읽어야 할 고전 중의 고전으로 거론된다. 우리에게는 1990년대의 홍콩 무협영화 '동방불패'의 원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화려한 빛깔은 눈을 멀게 하고, 화려한 소리는 귀를 멀게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가 아니겠나."

이 책의 한 구절이다.

일반적으로 공공도서관에서 무협소설이란 장르는 접하기가 쉽지 않다. 선정적이거나 폭력적인 내용이 들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모든 연령대가 함께 이용하는 도서관에서 소장하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오강호'는 대한민국에 있는 수많은 공공도서관들의 선택을 받은 책이다. 출간된 지 짧지 않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으며 꾸준히 읽혀지고 있다.

고인께서는 분명 여덟 권이나 되는 이 책을 끝까지 읽고자 할 만큼 삶에 대한 의지가 있었으나,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이 소설의 결말을 끝내 보지 못하고 떠나셨을 것이라고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나는 내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기 전 어떤 책을 손에 들고 있을까. 독자 여러분은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을 때 어떤 책을 고르시겠습니까.

정대광 고산도서관 사서

정대광 고산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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