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중앙선관위원장은 사퇴해야

정상환 변호사(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정상환 변호사(전 국가인권위 상임위원)

4일과 5일 치러진 제20대 대선 사전투표에서 사전투표율이 역대 최고인 36.93%를 기록했다. 선관위의 5일 발표에 따르면 4~5일 이틀 동안 유권자 4천419만 7천692명 중 1천632만 3천602명이 사전투표에 참여했으며, 이는 역대 최고치인 2020년 총선의 26.69%보다 무려 10.24%포인트(p)나 높은 수치다.

그러나 여러 가지 문제점도 속출했다. 특히 코로나19 확진자와 격리자 투표 과정에서 부정선거로 의심을 살 만한 일들이 발생했다. 확진자용 임시 기표소에 투표함이 마련되지 않아 참관인이 상자, 바구니, 쇼핑백 등에 기표가 된 투표용지를 모아서 투표함에 대신 넣는 일이 발생했다. 투표용지를 본인이 기표함에 직접 넣도록 되어 있는 규정을 어긴 것이다. 그리고, 이미 1번 란에 기표된 투표용지를 주기도 했다.

오죽했으면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총괄선대위원장이 6일 코로나19 확진자 사전투표 관리 미흡을 둘러싼 논란에 "2022년 대한민국이 맞냐"고 비판했을까? 국민의힘 당직자뿐만 아니라 민주당 당직자들이 선관위를 항의 방문한 것도 책임의 불똥이 자기들에게 튀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사태가 이러함에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일 현재 "송구하다. 준비 소홀은 있었지만, 부정선거는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중앙선관위의 태도는 너무 안일하고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0년 총선은 1960년 3·15 부정선거 이후 가장 부정선거 논란이 된 선거였다. 그 주장의 당부를 떠나 많은 보수정당 지지자들이 부정선거의 증거라면서 수많은 자료를 SNS에 공유했고, 심지어 제1야당의 전 대표가 이 주장에 앞장서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대법원에 관련 재판이 계류 중이므로 그 결과를 기다리면 되겠지만, 우리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문제는 많은 국민들이 선거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다.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의 공정성이 의심받는 상황은 국가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문제다. 공자는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했다. '백성의 믿음이 없으면 나라가 제대로 설 수 없다'는 뜻이다. 이처럼 국가는 국민들이 '국가가 공정하다'는 신뢰 위에 존재하고 유지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Public Trust'(공공의 신뢰)를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공공의 신뢰를 해치는 일에 대해서는 국가기관, 언론, 시민단체 등이 모두 민감하게 대응한다.

부정선거 논란이 계속되는 것은 국가 장래를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이번 대선 사전투표 과정에서 드러난 여러 문제점들은 부정선거 논란을 잠재울 기회를 오히려 불에 기름을 끼얹는 계기로 만들어 버렸다.

법률 격언 중에 "정의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정의롭게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다. 선관위는 선거의 공정성을 의심받을 상황을 자초했다. 이번 사태를 단순히 선관위 실무진의 준비 소홀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파장이 크고 국가에 끼친 피해가 크다.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걷잡을 수 없는 선거 불복운동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최고 책임자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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