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요일 아침]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란다

양진영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양진영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양진영 대구경북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 이사장

오늘(9일)은 대한민국 제20대 대통령이 결정되는 날이다. 축배를 들 당선인이 챙겨야 할 많은 사안이 있겠지만, 대한민국 의료산업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다.

첨단의료산업진흥재단은 어떻게 생기게 됐나, 10년의 세월을 돌아보자.

지난 2005년 '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에서 차세대 국가 성장동력으로 의료산업을 선정하고, 첨단의료복합단지 조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의료산업선진화위는 대통령 자문 위원회로, 위원장은 국무총리가 맡을 만큼 당시 화제였다.

정부는 "미국이나 유럽은 의료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보고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으니, 대한민국도 의료 분야에 집중해 투자하겠다"고 청사진을 밝혔다.

의료산업은 매력적인 분야다.

자동차와 IT 전체 시장을 합친 것보다 규모가 클 정도로 의료산업은 엄청난 크기의 시장을 갖고 있다. 산업 규모는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지고 새로운 질병은 계속해서 발생하는 데다, 디지털 혁신에 따라 병원의 복잡한 의료 데이터를 자동화하는 업무까지 생겨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산업은 개인 기업이 투자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과 비용이 필요하다.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 통상 10년, 10조 원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유럽이 선점한 의료산업을 따라잡기 위해 많은 선진국은 국가 차원에서 의료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미국에는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가, 일본에는 고베 첨단의료진흥재단이, 싱가포르에는 바이오 폴리스가 있다. 모두 유럽을 따라잡을 때까지 정부에서 의료산업을 집중 지원했다.

정부는 '한국판 보스턴 바이오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꿈을 밝혔다.

보스턴은 대학과 병원을 중심으로 의료 클러스터를 만들고 실제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학과 병원이 있는 대구에 보스턴은 확실한 목표 지점이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의료산업 클러스터의 꿈은 쉽지 않았다.

시작부터 문제였다. 좋은 먹거리 산업에 막대한 정부 예산이 투입된다고 하자 전국 지자체가 뛰어들어 '내 땅에 와야 하는 이유'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정부는 지난 2009년 8월 첨단의료복합단지 입지 선정에서 대구(케이메디허브)와 오송으로 두 곳에 분산 배치를 발표해 버렸다.

우리는 미국처럼 초반에 정부가 적극 밀어주면 의료산업계가 쑥쑥 성장해 유럽을 따라잡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뭔가 잘못됐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물론 몇 가지 장점을 보여 줬지만, 대한민국은 여전히 의료계 강국으로 성장하지 못했고, 화이자급의 기업도 나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정부는 첨단의료복합단지를 미국 보스턴처럼 적극 밀어주지 못했다.

신약과 첨단의료기기 개발에 천문학적 비용과 시간이 들기 때문에 정부 주도로 첨복재단을 만들어놓고, 예산 투입 몇 년 만에 자립화를 요구했다. 목표 정원을 채우기도 전에 연구원 연봉을 제한하고, 공공성을 위해 수수료를 낮게 책정했던 기술 서비스에서 수익을 요구했다.

더불어 서울을 제외한 지방에서 무언가를 해 보려 할 때 꼭 나오는 '특정 지역 몰아주기'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전국 지자체에서 대구와 오송만 의료산업 클러스터를 가지는 데 대한 차별과 억울함을 토로했고, 정부는 특정 지역만 편들지 않으려 외면했다.

정부가 제 역할을 안 하니 지자체가 너나없이 뛰어들어 춘추전국시대를 만들고 있다.

서울은 홍릉 바이오 허브를 키우고, 경기도는 판교 테크노밸리를 얘기한다. 송도도 바이오클러스터를 내세우고, 부산 지역은 김해 의생명산업진흥원을 필두로 이 분야에 뛰어들었다. 강원도는 원주의료기기테크노밸리, 광주도 의료 헬스케어를 차세대 전략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전국 16개가 넘는 지자체가 의료클러스터를 만들고 있다. 아직 국내 의료산업 규모도 작고, 국제적 수준의 기업 하나 없는 판에 국내에서 우리끼리 파이를 뜯어가니 대한민국 의료산업이 급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바란다.

처음 첨복단지를 만들었던 이유를 생각해 달라. 우리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대한민국은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 코로나19로 경험한 세상이 지금 우리에게 의료산업에 투자해야 미래에 손해가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는가?

의료산업을 수급 안정에만 초점을 두지 않고, 개발과 도전의 대상으로 본다면 케이메디허브를 보는 시각도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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