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는 큐레이터다] <5> 권미옥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관객은 큐레이터 눈 통해 세상 만나…
큐레이터, 세상 아우르는 시선 필요
새로운 영역의 전시 도전해보고싶어”

권미옥 대구미술관 학예실장이 모던라이프전에 전시 중인 호안미로의 작품 앞에서 웃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권미옥 대구미술관 학예실장이 모던라이프전에 전시 중인 호안미로의 작품 앞에서 웃어보이고 있다. 이연정 기자

"빵이 안팔려도 좋으니, 내가 좋아하는 빵이 가득한 빵집을 열고 싶어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온 이 일을 잘 마무리하고 어떤 새로운 도전을 할 지 가끔 생각하죠. 아, 지난 주말에는 갑자기 피아노를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권미옥 대구미술관 학예실장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수줍게 웃으며 답했다. 자기계발과 도전의 꿈을 내비치는 모습에서 매번 신선하고 발전적인 전시로 호평을 받는 대구미술관의 모습이 겹쳐보였다. 그는 "대구미술관의 탄생은 곧 대구 근현대미술이 장족의 발전을 한 것과도 같다"며 미술관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을 드러냈다.

▶큐레이터의 길로 들어선 계기는?

-1988년 대학에 입학해 불어불문학을 전공했고 프랑스로 유학을 갔다. 그 도시를 알려면 미술관, 박물관을 가보라고 하지 않나. 직접 가서 작품을 보니 굉장히 좋았고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는 마음이 들어서, 프랑스에서 미술사학을 전공하며 본격적으로 큐레이터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그 전에는 사실 우리나라에서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본 적은 거의 없었다. 다만 고등학생 때 대구백화점 주변에 있던 갤러리에 가서 조용히 그림을 보는 것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다.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2007년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에서 큐레이터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9년 정도 일하다 대구미술관으로 온 지 6년째다.

▶대구미술관이 지난해 10주년을 맞았고, 올해 새로운 시작의 원년이다. 어떤 변화가 기다리고 있나.

-앞으로의 10년은 내실이 더욱 단단해질 것이라고 본다. 이르면 내년부터 부속동을 활용한다. 건물 전체가 마침내 대구미술관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동안 부족했던 부분을 보완하며 발전해나갈 것이다.

연 1, 2회 소장품 기획전을 여는 상설전시장과 세계적 트렌드인 개방형 수장고도 구축한다. 개방형 수장고는 보존과 전시를 합한 개념이다. 소장품 등을 보존하는 동시에 일반인들이 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또한 미술관 안의 카페테리아의 역할이 중요한 시대다. 힐링과 문화가 어우러져, 재충전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 그동안 전시를 보고 나서 제대로 쉴 수 있는 곳이 없어 아쉽다는 얘기가 많았는데 이런 점도 더 나아지리라 기대한다.

대구미술관 3층 아카이브 앞에서 권미옥 학예실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대구미술관 3층 아카이브 앞에서 권미옥 학예실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연정 기자

▶미술관의 역할이 다양해지면서 큐레이터의 역할도 다양해졌을 것 같다.

-예전에 큐레이터는 전시 기획 인력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미술산업이 고도화, 전문화되면서 인력이 세부화됐다. 지금의 큐레이터는 큐레이션의 역할뿐만 아니라 컨서베이터(conservator·보존가), 아키비스트(archivist·기록물관리전문가), 에듀케이터(educator·교육자) 등 다양한 분야로 역할이 나눠져 있다.

▶코로나19로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2020년 2월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되면서 미술관이 석달간 문을 닫았고, 당시 추진하던 해외교류전도 보류됐다.

당시 3개월 휴관 후 재개관할 때 급하게 준비했던 전시가 기억에 남는다. 코로나19가 휩쓴 사회의 단면을 가감없이 보여주는 것도 미술관으로서는 중요한 역할이다. 우리에게 닥친 이 상황을 3개월 만에 어떻게 준비해서 보여줄 것인지 고민이 많았다. 당시 지역간 교류는 물론, 이동도 힘든 상황이었다.

지역 작가들과 함께 똘똘 뭉쳐 코로나에 맞서는 태도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일상의 변화를 보여주는 전시인 '새로운 연대'를 기획했다. 희망 드로잉 프로젝트로 지역 작가 50명이 챌린지 형태로 참여했다. 당시 코로나 극복을 위한 전시는 대구미술관이 가장 빨랐을거다.

▶기억에 남는 전시는?

-27일(일)까지 열리는 모던라이프전은 꼬박 2년을 준비한 전시다. 2019년 10월 말 최은주 관장과 함께 프랑스 매그재단을 찾아가 전시에 대한 내용을 합의했고, 매그재단 관계자들도 대구미술관을 찾아 현장을 보고 5월쯤 전시 오픈을 약속하는 등 순조롭게 진행됐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무산됐다. 그러나 지난해 초 매그재단과 다시 화상회의를 수차례 열며 전시를 추진하게 됐다. 화상회의로 진행하다보니 시간이 오래 걸리고 오해도 생기면서 전시 일정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천신만고를 겪은 뒤 룩셈부르크 공항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작품이 실렸다는 연락을 들었을 때 안도감을 잊을 수 없다. 미술관에 작품을 실은 나무상자들이 속속 도착하고, 샤갈의 그림과 자코메티의 조각품이 걸린 걸 보니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마음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만큼 더 애착이 가는 전시다.

▶큐레이터가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미술관에서 일한 지 15년째 가끔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큐레이터의 역할이 무엇인지 생각해본다. 모든 것에 앞서 스스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확립돼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교하고 냉철한 시선도 필요하겠지만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도 중요하다. 관객들은 큐레이터의 눈을 통해 작품의 세계를 만나게 된다. 큐레이터에게 세상 모든 것을 아우르는 시선이 필요한 이유다.

▶앞으로 기획해보고 싶은 전시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영역의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다. 일례로 이전에 일했던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은 건축과 도자 분야에 특화돼 있다. 건축쪽 큐레이팅을 해야하니 자연스럽게 당시 건축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하게 됐다. 4, 5년 정도가 지나고나니 주변에서 건축을 전공했냐고 묻더라. 새로운 분야를 공부하는 과정이 힘들었지만 지나고보니 뿌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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