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언제부터 행복할까요

이근자 소설가

이근자 소설가
이근자 소설가

공부방을 했기에 최근까지 아이들과 가까이 지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살려면 어른이 뭘 해야 될지 생각할 기회도 있었다.

여기 한 남자가 있다. 우리가 소위 노블리스 오블리주 계층이라 부르는 곳이 그가 속한 데였다. 그는 헌신적이고 똑똑하며 세련된 엄마와 능력 있고 너그러운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거기에다 외모는 준수하다는 단어에 어울렸으며 성품도 좋았다. 의대를 졸업하고 필수과정을 거친 후 이제 서른 중반이 됐다.

보통의 경우라면 결혼을 하는 게 다음 순서였다. 그에게는 몇 년을 사귄 과 커플인 연인까지 있었다. 하지만 얼마 전에 그녀를 떠나보냈단다. 여의사와 달리 그는 연애의 종착점이 결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단지 뛰어놀기 위해서란다.

한번 상상해보라. 남자 닥터 십여 명이 축구를 하며 땀 흘리는 모습을. 그들 중에 결혼한 친구는 아내의 눈치를 보느라 휴대폰을 향해 애원을 하고서야 1시간을 얻었단다. 그게 자신의 미래처럼 보여 그는 결단을 내렸다. 현재가 가장 행복했기에.

곧 중년이 되는 어른이 어른다운 일을 하는 것, 즉 미래 사회에 기여하지 않겠다는 그 말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그는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이어 의사가 될 게 분명한, 작고 귀여운 분신을 갖고 싶지 않은가. 그가 행복하다니 축하할 일이지만, 분명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는 어른인데 아이처럼 살겠다고 선언을 한다. 그건 아이 시절을 어른처럼 보냈다는 말로도 들린다. 그에게 학창시절은 연금술사가 별을 좇아가듯이 세상에게 질문을 던지는 즐거운 경험이 아니었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그 지점에 도달해야 한다는 무언의 설득에 수긍해, 밤을 지새우는 뒷모습이 그려진다. 정말 피로했을 것이다. 작은 그릇인 학습범위에 너무나 크고 활달한 상상력을 욱여넣어야 했으니.

다른 아이를 보자. 공부방에서 초등 5학년 여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 애는 이해력이 뛰어났다. 거기다 예쁘고 농담까지 잘해서 아이들에게 인기도 있었는데, 문제를 풀지 않으려는 고집이 보였다. 어느 날 문제지를 미뤄놓고 얘기를 나눴다. 그 애의 말이 걸작이었다. "저번에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올렸더니 엄마가 더 시키더라고요." 아이는 앞으로 공부는 적당히 할 거라고 덧붙였다. 어른들의 욕심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야무진 말이었다.

열두 살과 서른 중반에 한 선택. 둘의 나이는 다르지만 행복하고자 하는 열망은 같았다. 그래도 이 둘은 자발적으로 선택이라는 것을 한 행운아들이다.

얼마 전에 티브이를 보다가 젊은 외국인이 한 말이 잊히지 않는다. 자신의 학창시절은 매일 파티 같았단다. 파티라니. 친구가 실수하기만 기다리는 아이도 있는 게 우리 현실인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힘든 직업 중에 하나가 학생이라는 말에 동의하는 이유다. 아이에게 어른의 삶을 강요하지 말자.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됐다. 그가 만드는 나라에서는, 아이가 죄책감 없이 친구들과 뛰어놀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많은 사회문제들은 저절로 해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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