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광장] 마키아벨리의 비르투와 윤석열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김문환 역사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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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사 문예부흥의 산실 피렌체. 시내 중심을 가로지르는 아르노 강가 베키오 다리에 서면 르네상스의 비조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향해 품었던 첫사랑의 비련이 피어오른다. 단테의 애련을 되새기며 강 서쪽으로 몇 걸음 옮기면 시뇨리아 광장에서 국민주권의 열기가 솟아오른다. 중세 암흑의 왕정 시대에도 공화정치의 찬란한 빛을 꺼트리지 않았던 피렌체 공화국의 심장부다. 이 너른 마당에서 단테를 포함한 피렌체 시민들은 고대 로마 공화정치의 맥을 이었다.

공화국 청사 앞에는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가 1504년 공화정치의 상징으로 빚은 다윗 조각이 우뚝 섰다. 거인 골리앗을 넘어 불의를 물리칠 기세를 뽐낸다. 다윗에서 동쪽으로 발길을 돌려 15분여 걸으면 산타 크로체 성당에 닿는다. 기독교 역사가 깊은 서유럽에서 성당은 유명인들의 공동묘지로 쓰였다. 산타 크로체에도 세계사를 아로새기는 여러 인물의 넋이 깃들었다. 고국 피렌체에서 추방당해 결국 돌아오지 못한 채 라벤나에 묻힌 단테의 가묘, 이탈리아가 낳은 세계적인 작곡가 로시니의 무덤, 무선전신과 라디오 발명의 아버지이자 1935년 서울에 와 TV 시대 도래를 역설했던 마르코니의 무덤…. 여기에 정치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인물의 무덤이 오롯하다. 마키아벨리.

마키아벨리(1469~1527)는 조선 성종 즉위 해 태어나 연산군과 중종 시대 살았던 정치사상가다. 조선이 왕의 폭정과 도학정치의 냉온탕을 오가던 16세기 초 피렌체 역시 공화정과 참주정이 혼재된 시련기를 보냈다. 아울러,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겸한 합스부르크 왕가의 스페인이 침략해 와 국권을 유린당하던 위기 상황이었다. 르네상스를 주도하던 선진 문명국 피렌체의 지식인에게 내우외환에 휩싸인 조국 피렌체를 구하며 찬란한 로마제국의 영광을 재현할 지도자 갈망은 시대정신에 가까웠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IL PRINCIPE)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1512년 집필했지만, 사후 5년 만인 1532년 출간됐다. 그만큼 당시에도 정치적으로 민감한 저작이었음을 말해준다. 원로 정치학자 고려대 최장집 명예교수가 지금은 영어의 몸이 된 안희정이 대선 후보일 때 선물한 책이 바로 '군주론'이다. 한국의 정치인이라면 적어도 마키아벨리의 이 주장 하나만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는 메시지였을 것이다. '비르투'(Virtu).

마키아벨리는 그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성과를 내는 강한 '힘'(vir)을 '비르투'(virtu), 즉 덕(德)으로 칭송했다. 알렉산더나 카이사르 같은 정복자들이 가졌던 용기와 불굴의 정신인 동시에 공정하고 정직한 리더십을 가리킨다. 물론 마키아벨리의 비르투는 지도자가 필요할 경우 악행을 범할 수도 있음을 전제로 한다. 따라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악한 리더십을 옹호한 것으로 비난받기도 한다.

하지만, 비르투는 독재 옹호가 아니다. 국가를 지키고 국민의 행복을 보장하기 위해 거악과 싸워 어떻게든 이기는 힘을 뜻한다. 마키아벨리는 '로마사논고'에서 공화정이 군주정보다 우수한 정치체제라는 점을 밝힌다. 비르투가 절대왕정의 왕이 아닌 공화국 지도자의 덕목임이 분명해진다. 우크라이나 참상에서 보듯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안전하게 지켜주는 것이다. 또, 법치주의를 확보해 내로남불 없는 공정사회를 구현하는 일이다. 국권을 노리는 외세의 야욕은 물론, 부정부패 세력 분쇄를 위해 윤석열 당선인의 비르투 무장은 시대적 소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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