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바쁜 시대에 산 적도 없는듯하다. 예전 부모님 시대, 인사치레로 "식사하셨어요?"라고 묻는 것이 도리였다. 6.25전쟁 이후 당시, 끼니조차 해결하기 어려웠던 시절, 식사는 제대로 하고 사는지에 대한 물음이었다. 한 시대의 보편적 인사를 들어보면 그 사회의 분위기를 알 수 있다. 요즘 인사는 어떤가?
전화를 걸면 식사에 대한 질문보다는 "많이 바쁘지요?"라고 말문을 연다. 핸드폰에 발신자 정보까지 친절히 뜨다 보니 안녕하세요라는 말도 굳이 사용하지 않는다. 이는 과거와 달리 끼니를 거르는 사람이 없고, 모두 바쁘다 보니 혹시 내가 방해하는 것은 아닌가에 대한 예의 섞인 말인 듯하다.
바쁘다는 의미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바쁘다는 것은 그만큼 능력이 있다는 것으로 쉽게 추측할 수 있지만, 바쁘다는 한자, 바쁠 망(忙)을 풀어보면 마음 심(心)에 멸할 망(亡)자가 있다. 즉 바쁘다는 뜻은 마음이 죽어간다는 의미로도 볼 수 있다. 인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일반적으로 보는 시각과 다른 측면에서 삶을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바쁘다는 것은 존경의 대상이 아니라, 어쩌면 미리 준비하지 못하고 그만큼 게으르다는 방증(傍證)이 될 수도 있다.
기억건대 고교 시절, 소위 말하는 공부 잘하는 친구들은 시험 기간이 다가와도 절대 바쁘지 않았다. 수면 시간도 일정하였고, 마음에 분주함도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보통의 친구들, 벼락치기를 한다며 밤을 새우기도 하고, 평소와 다르게 행동이 까칠하기까지 하였다. 늘 부지런한 이들은 몸과 마음이 바쁘지 않은 듯하다.
졸업한 지 30년이 지난 오늘 그들의 삶을 보더라도 여전히 시간에 쫓기며 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처럼 부지런함 역시 단순히 성격의 문제가 아닌 습관은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영국의 대표적 소설가 찰스 디킨스의 말 '인생 멀리서 보면 희극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는 말처럼 지난 일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늘 바쁘기만 하다면 오늘은 비극이고, 지금이 힘들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삶은 고요함 속에 존재한다. 굳이 아침 명상이나 기도를 하며 오늘을 돌아보지 않더라도 최소한, 망(忙) 위에 우리의 소중한 행복을 올려두진 않았다. 해외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면 한국에 왔다는 것을 처음 느끼는 순간이 '빨리빨리'라는 말을 들을 때다. 또한, 공항에서 울려대는 빵빵 하는 소리는 "나는 급하니 빨리 가야 한다"는 외침이었고, KTX를 타지 않고, 여유롭게 버스를 타면 왠지 나만 뒤처진다는 느낌이 들기 일쑤였다.
과연 빠르게만 사는 것이 삶에 대한 바른 태도일까? 삶의 분주함에서 벗어나 여유를 얻는 방법은 무엇일까?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처럼 여유를 가지려면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하는지, 아니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생긴다.
나폴레옹의 "우리가 어느 날엔가 마주칠 재난은 우리가 소홀히 보낸 어느 시간에 대한 보복이다"라는 말처럼 어떻게 밀도 있게 시간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여유라는 해답을 찾을 수 있다. 오늘의 내가 만약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지난 과거, 시간의 용도를 잘못 사용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정말 게을렀거나, 아니면 열심히는 살았지만, 목표 없이 그냥 삽질만 하고 시간을 보냈을 공산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과 마음은 바쁘기 그지없었으리라.
목표가 없는 삶은 여유를 잡아먹는 스펀지와 같다. 혹시 십 년 후의 모습이 궁금하다면 오늘 우리가 보내는 시간의 용도를 알면 된다. 하루 24시간 중 어디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가? 책 보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고 있는지, 아니면 운동에 시간이라는 가치를 투자하는지 말이다. 혹시라도 어떠한 변명으로든 의미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면, 그럼에도 미래를 핑크빛으로 꿈꾸는 사람은 없기를. 이것은 마치 로또 한 장으로 인생이 역전될 거라는 허황한 믿음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미래 자신의 모습을 그려보고, 무엇이 지금 부족한지 알 수 있다면, 오늘 우리가 사용해야 할 시간은 분명해진다. 확실한 목표가 서 있다면 빨리 가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멈추지 않고 매일 가면 되는 것이다. 확실한 방향성이 없는 빠름이란 방황일 뿐이다. 즉 그치지 않는 바쁨의 영속선 위에서 방황은 우리의 영혼만 힘들게 한다.
급한 것과 중요한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논어>의 위령공편 11장을 보면 이런 글귀가 나온다. 무원려 필유근우 (無遠慮 必有近憂), 즉 먼 장래를 생각하지 않고 일을 계획 없이 추진하면 반드시 눈앞에 걱정거리가 생김을 이르는 말이다. 계획을 세우지 않고 중요한 것을 처리하지 않는 사람은 늘 눈앞에 닥친 오늘이 바쁘고 하루하루를 쳐내기에 정신이 없다. 마음이 급하면 일 또한 집중해서 잘할 수가 없다.
이제 목표가 설정되었고 조바심을 낼 필요조차 없는 이유까지 알았다면 마음은 바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우선순위와 몰입의 가치에 대해 덧붙여 말하고 싶다. 하루가 24시간으로 한정되어 있고 일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되었다 가정했을 때, 바쁘지 않으면서도 일을 잘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바로 우선순위를 정하는 데 있다. 다국적기업이었던 첫 직장. 이곳에 입사한 신입사원이 배우는 첫 번째 일은 바로 시간 관리이다. 하루 할 일을 나열하여 위클리 다이어리에 적고, 그 앞에 네모박스를 만들어 우선순위를 만든다. 그리고 마무리된 일은 줄을 치는 일. 제한된 근무시간 중에 업무를 완성하려면 이러한 습관들이 필요하였음을 강조한 것이다.
또한, 출근 후 잠깐의 회의 이후에는 부서원들끼리 절대 회의나 소통을 하지 않았다. 이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몰입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이에 대하여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제이슨 렝스토프 역시 일하는 시간과 생산력의 관계에서 워밍업과 효율성이 떨어지는 시간 사이의 몰입구간을 연구, 발표하였다.
즉 2시간의 워밍업 시간 이후부터 시작되는 4시간이 바로 몰입구간이다. 몰입구간에는 다른 방해를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몰입이 가지는 힘은 일의 효용성을 증폭시키고, 남은 시간을 편한 휴식으로 보상하게끔 한다.
욕속부달(欲速不達), 너무 빨리 가려고 하면 오히려 도달하지 못한다고 공자는 빠름보다 바르게 가는 것을 강조하였고, 우보천리(牛步千里), 느린 소걸음으로 천 리를 간다고 했듯이 인생을 길게 바라보는, 서두름 없는 지혜가 때로는 필요하다. 슬기롭게 세상을 살아나가려면 목적 있는 삶, 그리고 몰입하는 시간으로 삶을 확장해 나간다면 바쁘다는 핑계로 정말 소중한 것을 못하는 그러한 우(愚)는 범하지 않을 것 같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한동훈·가족 명의글' 1천68개 전수조사…"비방글은 12건 뿐"
사드 사태…굴중(屈中)·반미(反美) 끝판왕 文정권! [석민의News픽]
"죽지 않는다" 이재명…망나니 칼춤 예산·법안 [석민의News픽]
"이재명 외 대통령 후보 할 인물 없어…무죄 확신" 野 박수현 소신 발언
尹, 상승세 탄 국정지지율 50% 근접… 다시 결집하는 대구경북 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