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피소드로 읽는 전쟁 톡톡] 콤비로 이뤄낸 기적의 승리, 탄넨베르크 전투

현장을 방문하여 전황을 살펴보는 힌덴부르크와 참모진들.
현장을 방문하여 전황을 살펴보는 힌덴부르크와 참모진들.

3월 초에 발생한 울진 산불이 근 열흘 만에야 잡혔다. 부주의한 작은 불씨가 돌이킬 수 없는 대재해를 남기고 갔다. 화마는 일순간 수십 채의 민가를 포함한 2만㏊에 가까운 삼림을 삼켜버렸다.

사활을 걸고 불길을 막아낸 소방관과 삶터를 잃은 채로 진화에 물러서지 않은 지역 주민의 노고와 고통을 어찌 다 말하랴. 그들과 함께 천혜의 실낱같은 빗줄기가 보태어 그 세찬 불길을 마침내 잡았다.

날개를 단듯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시뻘건 산불은 화염을 내뿜으며 진격해오는 전사를 방불케 하였다. 불길은 산곡을 넘고 마을을 감싸며 엄습해 들어왔다. 전진하는 데 걸리는 것들을 마구잡이로 집어삼키는 불길을 무기력하게 지켜보던 나는 1차 대전 당시 열세한 전력으로 러시아의 대군을 이겨낸 탄넨베르크 포위 작전의 기적을 상상해 보았다.

1914년 8월 13일, 출병 준비기간이 적어도 6주일은 걸릴 것이라는 독일의 예측을 뒤엎고 2주일 만에 러시아군이 국경을 넘었다.

-동프로이센으로 진격하라!!

러시아가 80만의 대군을 이끌고 독일의 정신이 배태한 땅, 동프로이센을 점령하려는 공세였다. 이에 반해 독일은 서부 주력군을 제외한 나머지 제8군의 병력 16만 명으로 러시아를 대적해야 했다. 현실적으로 러시아군을 방어하기에는 턱없이 열세한 전력이었다.

독일로 진군한 러시아군은 오늘날 폴란드의 아름다운 휴양지인 마주리안 호수 지역에 도착하여 주춤하게 된다. 길게 열린 마주리안 호수는 러시아군의 진격로에 크나큰 장애가 되었다. 호수를 건널 수 없던 러시아군은 호수 남북으로 1, 2군을 분리하여 나아가기로 하였다. 이와 같은 정보를 입수한 독일군은 러시아의 2군을 먼저 공략한 다음 1군을 공략하기로 하였다.

8월 24일 독일군은 전략적으로 후퇴하면서 러시아 2군을 유인하여 북부 탄넨베르크에 도착한다. 독일군은 탄넨베르크 마을의 울창한 숲속에 은폐하고 러시아 2군을 포위망에 들어오게 한다. 그리고 27일, 독일군에게 완전 포위된 러시아군은 그제야 마주리안 호수 부근의 1군에게 지원요청을 하지만 이미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두 지휘관의 해묵은 불협의 감정까지 겹쳐 2군은 끝내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독일 기병군의 공격을 받고 패하고 만다. 그러고 난 독일군은 다시 마주리안 호수 주변으로 이동하여 1군을 공격하게 되니 러시아군은 결국 거대병력을 동원하고도 독일 방어진을 넘지 못했다.

마침내 탄넨베르크와 마주리안 호수 지역에서 러시아군을 제압한 독일은 동프로이센을 지키면서 국경지대 일부를 점령하는 승전으로 전투를 끝낸다.

승리를 이끌어 낸 대담한 포위 작전, 탄넨베르크 전투는 곧 작전 참모 호프만 중령이 계획하고 시행하였다. 그리고 그것을 백분 믿고 추인해준 8군사령관 힌덴부르크와 그 참모장 루덴도르프가 하나가 되어 이끌어낸 작품이었다.

사실 8군 지휘관으로 새로 내정된 힌덴부르크가 동프로이센에 도착했을 때 독일군은 이미 호프만의 작전 계획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기동한 이후였고 사전 동의 없이 수행된 작전참모의 작전계획이지만 지휘관은 의심 없이 즉각 승인했던 것이다.

호프만은 개전 전 동프로이센 전역을 경험하면서 러시아군의 전략을 누구보다도 정확하게 이해하였을 뿐만 아니라 러시아군 두 지휘관의 심리적인 불협화음까지 간파하여 콤비를 이루어야 할 두 지휘관이 부대 간 협력을 도모하지 않고 개별적으로 작전을 펼칠 것이라는 점까지 예측했던 것이다.

독일군에서는 오래도록 탄넨베르크의 승리가 HLH 콤비의 공으로 회자되었다. HLH는 8군사령관 힌덴부르크(Hindenburg), 참모장 루덴돌프(Ludendorlf) 그리고 작전참모 호프만(Hofman)의 이름 첫 글자를 따 조합한 것인데 절묘한 궁합을 의미한다,

탄넨베르크 전투의 승리는 수많은 전쟁사 속에서 '불화는 대군을 갖추고도 패배하지만 믿음과 조화는 열세한 병력이지만 포위전을 성공시킨다'는 전례를 만들어 주고 있다.

비단 거창한 전투가 아니더라도 사람 사이에 콤비가 잘 이루어지려면 진정 어린 소통과 믿음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묶인 콤비는 서로의 역량을 증폭시켜 준다. 콤비, 아름답게 작동하는 조화는 사람관계뿐만 아니라 기계나 패션에서도 확장되어 쓰이고 있다.

살짝 뿌리고 지나간 실비에도 봄이 한 뼘 자랐다. 내일모레가 춘분, 봄을 기다리는 내 맘을 옷으로 내비치고 싶다. 내일 출근길에 나는 네이비 재킷과 그레이 바지를 맞춰 입고 나서야겠다. 그 또한 콤비를 이루리라.

김정식
김정식

김정식 육군삼사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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