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우리말 한마당

우하영 대구시 자원봉사센타 기자

우하영 대구시 자원봉사센타 기자
우하영 대구시 자원봉사센타 기자

바햐흐로 일 년 중 낮과 밤의 길이가 꼭 같다고 하는 춘분이 턱 밑에 왔다. 차제네 등골이 오싹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말에서부터 기상천외한 해학과 풍자, 그리고 감동이 녹아 있는 색다른 우리말을 한번 소개해 보겠다. 먼저 '보자기에 싸다'란 뜻의 '보-,쌈'이란 단어부터 심층 분석해 보자.

이 말은 보자기를 의미하는 한자어인 '보(褓)'와 상추나 배추 김 따위로 박과 반찬을 싸서 먹는 일 또는 그 음식을 이르는 고유어인 '쌈'과의 합성어이다. 한데 과연 이 말의 본디 뜻은 무엇일까. 놀라지 마시라! 옛날 양반집 딸이 둘 이상의 남편을 섬겨야 할 붙잡아다가 딸과 재운 마음에 죽이던 무시무시한 말이었다. 이후 이 말은. 노총각이 과부를 보에 몰래 싸서 데려와 부인으로 삼던 일 혹은 뜻밖에 누구에게 붙잡혀 가던 일을 비유하여 일컫던 말로 변천되어 왔다. 이 끔찍한 말이 오늘날은,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삶아 보에 싸서 눌렀다 먹는 음식 또는 양품이 한 그릇에 먹이를 붙이고 고기가 들어갈 만한 구멍을 낸 보자기로 싸서, 물 속에 가라 앉혀 놓고 물고기를 잡는 일 또는 그 기구를 이르는 말로 대중화되어 귀에 익숙한 말이 되었다. 파생어로 '보쌈김치'와 다림질 할 때 옷을 축축한 보자기에 사서 눅지게 하는 '보쌈질'이 있으니 이야말로 우리말의 '아이러니'이자 엄청난 격세지감을 안겨 주는 대목이다.

한때 어느 젊은 정치인이 '비빔밥론'을 주창해, 세간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우리말 사전은 '두루치기'란 낱말에 대해 '돼지고기, 조갯살, 낙지'따위를 슬쩍 데쳐서 갖은 양념을 한 우리 전통 음식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 재료가 다양하여 지역을 불문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 먹었던 두루치기란 말에는 흥미진진한 속뜻이 깃들어 있다. '귀하여 쓰임이 많은 한 가지의 물건을 여러 사람이 이리저리 둘러쓰는 일, 한 사람이 여러 방면에 능통한 일 또는 그런 사람'을 일컫는 말로 남의 일을 잘 주선해 주거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힘써 주는 두름성 좋은 사람을 가르키는 말이다. 전대이문의 코로나 사태로 골목인심마저 냉랭해 지도 있단다. 이참에 답답한 세상사 시원스럽게 해결해 줄 두루치기 같은 사람은 없을까. 학수고대해 본다.

또 있다. 내친김에 '궁둥이-내외'란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남녀 간 초면 인사 범도를 소개한다. 이 말은, 외간 남녀가 마주쳤을 때, 서로 얼굴을 대하지 않고 궁둥이를 슬쩍 빼면서 돌아서서 피하는 동작으로, 내외(內外)라는 옛 유교식 예정에서 비롯된 것으로 관련어로는 접대부 없이 술을 순배로 파는 '내외-주점'이 있다. 되풀이되는 지도층 인사들이 성추행 범죄에 식상한 국민들에게 이, 격절탄상(무릎을 치면서 탄복하며 칭찬함)할 깍듯한 예의범절이 가슴에 와닿는 이유다.

뿐만 아니라 부부간의 드러나지 않는, 지극히 내밀한 사적공간을 송사(訟事) 혹은 공사(公事)같은 공적 영역에 빗대어 표현한 이채로운 말도 있는데 '베겟머리-송사'나 '베겟밑-공사'가 바로 그것들이다. 뜻인즉, '아내가 자기의 바라는 바를 잠자리에서 남편에게 속삭여 청하는 일로 "베겟밑공사에 안 넘어가는 남자 없다."와 같이 쓰인다. 부디 이 기회에 하늘 아래 모든 아내분들의 묵은 소원 하나가 오늘 밤 베겟밑공사에서 꼭 이루어지시길…….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