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사오'라는 베트남어가 있다. 흔히 '괜찮아요'로 번역이 된다. 그런데, 이런 해석으로 인해 베트남에서 화가 나 속터져 죽은 한국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고 한다. 돈 내고 서비스받은 결과를 보거나 회사에서 일을 시킨 결과가 미흡해서 화를 낼 때 자주 나오는 말이다.
오죽했으면 현지에 진출한 기업의 한국 관리자가 현지인 직원의 잘못한 것을 지적하는 과정에서 이 말로 화를 참지 못해 자기 책상을 엎는 모습이 동영상으로 올라온 사건도 있었을 정도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미안하다' '잘못했다'고 시인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지리적 특성에 따라 역사와 문화가 달라지고 고스란히 언어 습관에 반영되기 때문일 것이다. 동남아 지역은 중국, 인도라는 거대 문화와 국력이 교차된다는 사실만으로도 지리적 특성이 짐작이 된다. 여기에 회교문화도 영향을 미쳤다.
제국주의 시절에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 미국, 일본 등이 거쳐 갔고 냉전시대에는 베트남전쟁으로 극한 대립이 있었다. 종전 이후에도 중국의 침략 등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다. 세계 5위의 쌀 생산 국가라는 중요성으로 강대국이 호시탐탐 노렸을 것이다. 거기서 생존 차원에서 한쪽 편으로 쏠린다든가 잘못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다음은 불을 보듯 뻔하다.
눈을 돌려보면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오고 가다 만나면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진지 드셨습니까' '밥은 먹고 다니냐' 등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인사말이 그렇다. 거대한 대륙 세력과 해양 세력의 충돌로 인하여 전쟁이 끊일 날이 없지 않았던가. 경상도의 '됐심다'와 충청도의 '됐슈'라는 말을 보자. 말투와 끝 올림과 내림에 따라 또 달라진다. '알았습니다' '그만하세요', 심지어는 '니나 잘하세요' 등 모호함과 단호함의 양극단을 오간다. 미묘하게 차이가 느껴지는 말로 지리적 위치와 역사를 짚어 보아야 이해가 된다.
그런데, 요즘 우리가 접하는 나라가 한두 곳이 아니다. 그때마다 말의 뜻을 단정적으로 이해하면 큰 사달이 날 것 같다. 언어를 잘 배우기도 보통 일이 아니니, 두 가지 방법으로 세계 시민이 되는 길을 생각해 본다.
하나는 애당초 다양한 뜻이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지난 일요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청와대 이전 이슈를 직접 지시봉을 들고 설명, 발표하는 방식을 표현하는 단어인 프레젠테이션의 기본형인 프리젠트는 현재, 선물, 출석하다라는 뜻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음 직하다.
그런데 이 단어가 승부를 가르다, 총을 겨누다, 받들어 총이라는 뜻이 있어 프레젠테이션이 가지는 정중함, 승부 지향성, 목적 집중성이라는 숨은 뜻을 말하면 대개가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콤사오도 괜찮아요로만 해석하지 말고 애당초 '알겠습니다' '넘어갑시다' '진정하세요' 등의 다양한 뜻으로 이해했다면 어떨까.
두 번째 방법으로 말의 뜻을 대화의 맥락 속에서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눈을 마주치고 대화화며 경청하는 것이다. 대체적으로 눈을 보면 그 사람의 속을 깊게 헤아릴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진다. 베트남 사람이 눈 마주치는 것을 피하며, 웬만하면 웃는 얼굴을 하고 거절하지 못한다는 특성이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한다.
결혼을 위해, 직업을 찾아, 관광 목적으로, 공부하기 위해 베트남을 포함한 동남아의 수많은 사람이 한국을 찾아오고 생활 깊숙이 스며들고 있다.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도 부지기수이다. 여행 제한이 풀리면 동남아 국가로 많이 오갈 것 같다.
말을 조금 바꿔 본다. 언어가 다르고 뉘앙스가 다르다는 것은 신의 축복이라는 생각이 든다. 짧은 시간에 다른 나라로 이동하고 기술의 발전에 따라 사회 복잡성이 더해지면서 상대를 내 기준으로 대하며 일방적이고 무례해지는 경우가 많다. 다른 나라 사람을 국가 경제력으로만 판단하는 무례함도 조심해야 한다. 언어가 다르니 문화나 역사를 헤아려 한 템포 늦추어 대화하게 되면 축복이 아니겠는가.
이런 와중에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 한 번에 지지하는 후보에 따라 서로가 철천지원수가 되는 듯하는 세태이다. 서로에게 한 템포 늦추면 어떨까. 오늘도 내가 찾은 식당이나 가게에서 베트남 사람을 만나지는 않을까. 혹시 실수로 안절부절못할 때 '콤사오'를 한 번 말해 주자. 글로벌 시대는 개념으로만 오는 것이 아니라 내 말 한마디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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