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그립습니다] 오명석(아트퍼니처 작가) 씨의 부친 고 오세경 씨

미술 반대했던 전형적 경상도 아버지…첫 전시에 제 작품 어루만지던 모습 선해

여동생 내외 출국 전 공항에서의 마지막 사진. 가족 제공.
여동생 내외 출국 전 공항에서의 마지막 사진. 가족 제공.

고즈넉한 밤 하늘을 밝혀주는 달빛을 보고 있으면 아직도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2020년 5월 26일 오전 7시 10분, 아버지께서는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습니다. 가쁜 숨을 몰아 내쉬며 말 한마디 제대로 하실 힘마저도 없었던 아버지⋯. 마지막까지 이 못난 아들의 손만큼은 꼬옥 잡아주셨습니다. 점점 사라져가는 아버지의 온기가⋯,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이⋯, 제게는 받아들이기 힘든 아픔이었고, 사무치는 슬픔이었습니다.

"무섭기만 했던 나의 아버지"

'저는 절대 아버지 같은 아버지는 되지 않을 거에요!' 제게 아버지는 늘 엄하고 무섭기만 한 존재였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 보다 호통이 익숙하셨던 아버지⋯, 잘못에 대화보다는 회초리를 먼저 드시곤 했던 아버지⋯, 저희 아버지는 전형적인 경상도 아버지였습니다. 미술을 반대하셨던 아버지⋯, 자식이 외롭고 힘든 길을 가는 것을 누구보다도 말리고 싶으셨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철없던 학창시절 저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에 사랑과 존경의 마음 보다는 미움과 원망이 앞서기 일쑤였습니다.

"존경하는 나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평생을 힘들게 살아오셨습니다. 젊은 날, 장남으로서 그리고 맏이로서 가족과 동생들을 보살피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셨고, 자식들과 가족을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오셨습니다. 말기 암 판정을 받던 날, 수술 후 마취가 덜 깬 아버지와 저는 태어나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정말 해보고 싶었던 게 어떤 것이었냐는 제 말에 주저 없이 '할리데이비슨'이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며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너무나 가슴이 먹먹해졌습니다.

아버지도 한 가정에 가장이기 이전에 꿈 많은 한 사내였다는 것을⋯. 가지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뒤로하고 희생과 헌신을 택하신 아버지⋯. 철부지였던 시절을 지나 처음 아버지께서 부모가 되었던 나이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모든 것들이 대단하게만 느껴집니다.

연애 시절로 돌아간 듯 환한 모습의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 제공.
연애 시절로 돌아간 듯 환한 모습의 아버지와 어머니. 가족 제공.

"그리운 나의 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원망과 미움은 감사함과 존경의 마음으로 바뀌고, 그 마음들은 이내 가슴 한 켠의 애틋함이 되었으며, 이들이 모이고 모여 곧 커다란 그리움으로 번지고, 응어리진 그리움은 결국 후회로 남아 저에 대한 원망이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강인한 분이셨습니다. 어떠한 고난이 와도 절대 나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께서는 제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보이셨습니다.

더 잘해주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며⋯. 저는 제 첫 전시에서 아버지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떠오릅니다. 절대 미술만은 안 된다며 불호령을 내리던 아버지께서 아무도 없는 전시장에서 홀로 제 작품들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미소 지으시던 모습을⋯. 아버지라는 이름 앞에 한 없이 작아지는 제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힘겹게 살다 가신 아버지께 모질게 굴었던 시간들과 잘해드리지 못한 후회가 아직도 가슴에 사무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한복음 11장 25-26절)"

아버지, 기억하시죠? 아버지께서 예배 때 마다 읊으시던 구절이에요. 정말 많이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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