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규의 행복학교] 마음의 가계부를 쓰는 일

최경규

초등학생 시절, 일기(日記)라는 글을 적었다. 그 시절 일기란 매일 해야 하는 숙제의 대명사, 개학 무렵이면 방학 동안 미루어 둔 일기를 몰아 적기도 하였다. 그래서인지 일기에 대하여 좋은 기억을 가진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이들이 많은 듯하다.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일기는 좋은 습관을 가르쳐주는 참교육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시련이란 이름으로 세상을 조금씩 알아감에도 불구하고,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많다는 착각 속에 빠지며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다. 모르는 것이 많던 어린 시절, 처음 경험한 일에 즐거웠던 내용을 적기도 하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반성의 글도 제법 있었다. 그때의 일기는 글이라는 도구로서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였다.

글을 쓴다는 것. 어쩌면 마음의 가계부를 쓰는 일이다. 가계부를 쓴다고 해서 없던 수입이 더 생기는 것은 아니지만 돈의 흐름을 알고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며 반성할 수도 있다. 글을 쓴다는 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지나간 일들을 돌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후회와 새로운 다짐을 하는 시간을 자연스레 가지게 한다. 바쁘다는 이유로 우리는 앞을 향해서만 과감히 행진한다.

마치 개선장군이 전장에서 돌아오듯이 말이다. 돌아볼 여유가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라 돌아보아야 한다는 의식조차 하지 않을 때가 많다. 글을 쓴다는 것은 지난 일들의 뼈아픈 실수의 통곡이 될 수도 있지만, 그 이상의 값진 시간을 선물한다. 성찰 없이 내일의 희망을 바라는 것은 모래 위에 성을 쌓는 것과 진배없지만 그 사실을 우리는 자주 잊는 듯하다.

◆글쓰기는 진정한 성찰의 시간

글을 씀으로써 얻는 가장 큰 혜택은 바로 진정한 성찰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나 또한 돌이켜보면 마음이 평화로울 때 글을 쓰는 경우보다, 감정이 파도칠 때, 즉 괴롭거나 힘들 때, 내 마음을 돌이켜보고 다독이는 시기에 펜을 잡는 듯하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묵언 수행까지 할 필요가 없다. 바로 글을 쓰다 보면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고, 마음속 자아(自我)를 만나 응원과 위로까지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한다. 말로만 생각을 정리해서는 한눈에 정리가 되지 않거니와 기승전결에 따른 짜임새가 없다. 비록 낙서나 메모라 할지라도 생각을 글로 써 볼 때 비로소 정리되어 무엇이 부족하고 넘치는지에 대하여 파악할 수 있다. 스마트시대임에도 불구하고 기업 대표들이 항상 작은 수첩을 가지고 다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메모하기 위함도 있지만 적으면서 스스로 정리되고 기억하기 때문이다. 흔히들 말하는 컨닝페이퍼 효과라고 들어본 적이 있는가? 시험을 앞둔 학생들이 아주 작은 메모지에 깨알 같은 글씨로 시험시간 동안 몰래 볼 내용을 종이에 적는 것이다. 아주 작은 글씨로 적다 보면 글씨를 잘못 적어 몇 번이고 새로 만들어야만 했다. 그러는 동안 기억을 하게 되며 결국 컨닝페이퍼는 필요 없게 되었다.

사람을 평가할 때 보통 무엇으로 하는가? 독심술을 가지거나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고서는 한두 가지의 행동만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는 것은 많은 오류를 가질 수 있다. 이에 중국 당서(唐書)를 보면 사람을 평가할 때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하여 사람을 가리어 사귀었다.

즉 몸가짐을 어떻게 하는지, 말의 품격이 어떠한지, 현상에 대한 판단력이 어떠한지와 더불어 세 번째 한문 서(書). 바로 글쓰기가 있다.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글쓰기라는 것이다. 글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쉽게는 지식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고, 깊게는 삶의 결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쓰기 위한 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유명한 미국의 소설가였던 존 스타인백 역시 "첫 줄을 쓰는 것은 어마어마한 공포이자 마술이며 기도인 동시에 수줍음이다"라고 했듯이 처음이 어려운 일이다. 남들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다. 베스트셀러를 위한 글이 아니다. 자신의 생각을 적어보고 뒤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위한 첫 줄이 필요하다. 시작이 반인 것처럼 쓰기 시작하면 어제를 돌아볼 기회를 가질 수 있다.

◆ 생각이 정리되고 뇌의 밀도가 높아져

글을 쓰지 않는다면 기존에 가지고 있는 고정된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 너무 현상과 가까이 있어서는 심지어 지금 이 순간이 고통인지 행복인지조차 구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이였던 적이 있지만, 이 사실을 기억하는 어른은 거의 없다라고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말한다.

글을 쓰는 것은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경건한 시간이고 마술이며 기적일 수 있다. 선입견과 편견은 보지도 않은 세상을 미리 고정된 프레임 속으로 가두어버린다. 연암 박지원이 검은 까마귀의 색이 보는 시선에 따라 검다고만 하지 않은 것처럼 우리는 또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아야 한다. 늘 깨어있어야만 한다. 글은 그러한 힘을 키워줄 수 있다.

성인이 되면서 과연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언제였을까? 아마 대학을 졸업할 무렵이 마지막이 아니었을지 싶다. 그 이유는 취업을 위해 자기소개서를 쓰기 때문이다. 장점도 쓰지만, 글을 쓰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이 무엇인지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사회에서 요구하는 인재가 되기 위해 앞으로 해야 할 노력을 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진정한 성찰, 도서관에서 눈으로 본 책의 숫자나 통장의 잔액과는 관계가 없다.

어제를 돌아볼 수 있는 진정한 반성은 어쩌면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글을 쓰는 순간에만 가능하다. 글을 써야 생각이 정리되고 뇌의 밀도가 높아진다. 아는데 표현하지 못한다는 것은 모르는 것이다. 글로 표현할 수 있는 것, 정리할 수 있는 것이 아는 것이다. 모호함에서 벗어나 명료함으로 추구하는 것이 바로 진정한 지혜이다.

인생은 컴퓨터 자판의 복사와 붙여넣기로 구성되어 있지도 않고, 그렇게 되어서도 안 된다. 그렇기에 어제보다 조금이라도 성숙한 오늘이 되고 싶다면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를 글로 적어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친구랑 수다를 떨고 오면 가슴이 시원해지는 것처럼, 내가 나에게 쓰는 글, 그 자체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지고 현상이 더 명확하게 보일 수 있다.

매슬로우가 말한 인간의 욕구 중, 가장 상위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도 다른 노력보다 스스로 가치를 객관적으로 알고, 분수에 맞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이 가능한 상태에 우리를 거(居)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 글쓰기에 대하여 오늘 생각하여 본다.

최경규

행복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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