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을 걷는다. 1년 넘게 헬스로, 귀찮은 걷기를 대신해왔다. 그런데 헬스장이 문을 닫았다. 지난주부터 다시 걷기 시작했다. 오늘 희망교에서 신천교까지 걷고 다시 수성교로 돌아오던 중 김광석길로 들어섰다. 그의 노래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가 어느새 내게 와 있다.
노부부가 걸어왔던 길을 회상하는 노래다. 사는 것은 결국 걷는 것이다. 인간에게 걷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새삼스럽다. 인간이 걷는 것은 물리적 운동만은 아니다. 생각이 걷는다.
서울 서초구 양재천에는 칸트의 산책길이 있다. 철학자 칸트는 매일 오후 7시 정각이면 산책에 나선다. 그의 산책 시각은 독일어의 문법 규칙만큼이나 규칙적이다.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이 그의 산책 시각에 자신의 시계를 맞출 정도였다. 산책을 지각한 일이 두 번 있었다. 한번은 1789년 프랑스혁명이 일어났을 때 신문을 챙겨보느라고, 다른 한 번은 루소의 '에밀'을 읽다가 시간을 놓쳤다.
그만의 산책 규칙이 있다. 걸으면서 코로 숨 쉴 것, 정해진 코스를 걸으며 동일한 리듬을 유지할 것, 맥주를 마시지 말 것, 제철 음식을 먹을 것, 고양이를 피할 것 등이다.(로제 폴 드루아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중)
칸트처럼 매일 걷는 친구가 있다.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가르치고 퇴직한 교수다. 그는 10년째 걷는다. 그는 차가 덜 다니는 중앙로를 관통해서 신천으로 걷는 코스를 좋아한다. 난 신천으로 바로 간다. 희망교를 중심으로 하루는 상동교 쪽으로, 하루는 침산교 쪽으로 걷는다. 때론 상동교를 거쳐 수성못을 걷거나 고산골로 넘어가는 정도의 애드리브가 고작이다.
각자가 걸어가야 할 그만의 길이 있다. 난 지금까지 남들은 잘 가지 않는 외로운 학문의 여정을 걸어왔다. 1983년부터 대학에서 철학을 가르치면서 나의 길을 열심히 걸어왔다. 적지 않은 저서와 번역서 그리고 연구 논문들이 그 궤적이다. 2020년, 2021년에도 두 권의 책을 출간했다.
내년이면 고희(古稀)다. 지금까지 걸어온 학문의 여정을 마무리하는 책을 쓰기 위해 다시 길을 떠나려 한다. 2005년에 썼던 책 '현대철학'을 다시 꺼내 들었다. 수정하고 보완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딸이 있는 파리를 중심으로 유럽의 몇몇 도시로 여행을 떠나려 한다.
"예술은 일상을 벗어날 수 있는 모든 것이다." 앤디 워홀의 말이다. 누구나 걷는 길을 따라가는 건 쉬운 일이다. 일상에 빠져 사는 것은 자신의 실존을 상실한 퇴락이고 자신의 존재에 대한 나태함이다.
우린 모두 길 위의 존재이다. 길 위에서 길을 물으면서 결국 홀로 걸어야 한다. 움푹 파인 홈에 안주하기보다는 평평한 공간을 질주하는 나만의 자유로운 삶을 살자. 한 곳에 닻을 내리지 말자. 우린 모두 각자의 마이웨이(My Way)를 걸어가야 할 호모 노마드(Homo nomad), 유목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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