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흘려서 진지 하나라도 소련 영토 1미터라도 완강하게 지켜야만 하며, 소련 땅 한 치를 고수하고 그것을 끝까지 지켜내야 한다."
독일군이 모스크바와 소련 남부 유전 지대를 잇는 볼가강 서안(西岸)의 수운(水運) 요충지 스탈린그라드를 향해 파죽지세로 진격하던 1942년 7월 28일 스탈린이 소련군에게 내린 '명령 227호'이다. 이에 따라 소련군은 죽을 걸 뻔히 알면서도 독일군 기관총 앞으로 돌격해야 했다.
돌격 명령에 따르지 않거나 무단 후퇴하면 내무인민위원회(NKVD) 소속 총살 부대나 병사들의 무단이탈과 공황을 막아 계속 싸우도록 하기 위해 스탈린이 편성을 지시한 '저지 부대'에 의해 즉결 처형됐다. 국내에도 개봉된 주드 로 주연의 '에너미 엣 더 게이트'에 그런 장면이 나온다. 이렇게 전쟁 중 사형 선고를 받은 장교와 병사는 15만8천 명에 이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운 좋게 처형을 면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형벌 부대에 배속돼 정규군의 안전한 진격을 위해 먼저 지뢰밭으로 걸어 들어가거나 독일 항공기의 공습을 받으면서 독일군 진지로 돌격해야 했다. 이들은 모두 44만2천 명에 달했다. 이들이 형벌 부대에서 나올 수 있는 방법은 죽거나 부상을 당하는 것뿐이었다.
명령 227호는 맥없이 무너지는 소련군을 다시 싸우게 하기 위한 극약 처방이었지만 소련군 사기에 도움이 되지 않았고 전술적 가치에 대한 일선 지휘관들의 평가도 회의적이었다. 그 때문인지 형벌 부대 운영은 점차 줄어들었고 전쟁의 흐름이 소련의 우세로 바뀌면서 1944년 11월 저지 부대가 해산되고 명령 227호는 사라진다.
러시아군 지휘부가 우크라이나 전선에서 이탈한 모든 병력을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렸으며 무자비한 고문으로 악명 높은 체첸 민병대가 탈영병을 관리 저지하는 임무를 맡고 있다고 우크라이나 보안국이 주장했다. 사실이라면 명령 227호가 부활했다고 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보안국도 "과거 스탈린 공포정치 시대에 실행됐던 형벌 전술의 부활"이라고 했다. 탈영이 빈발하고 이를 막으려고 사살 명령을 내렸다면 그 군대는 사실상 붕괴한 것이다.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 도박은 실패를 향해 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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