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당초 단기전이 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무색하게 벌써 한 달이 훌쩍 지나가고 있다. 그 시간 여러 언론매체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우크라이나의 참상이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타전되고 있다. 많은 국가와 기업이 러시아를 직간접적으로 압박하고 있지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듯하다. 오히려 그런 제재를 러시아에 대한 선전포고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푸틴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파장을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특히 유럽 지역에서 지난 수십 년 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져 왔던 많은 것이 변화하고 있다. 스위스는 푸틴 및 러시아 주요 인물들에 대한 자국 내 자산을 동결하는 유럽연합(EU)의 제재에 동참하기로 결정했다. 러시아 신흥 재벌(올리가르히)들이 자국 은행의 비밀 계좌에 은닉한 금액도 공개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대표적인 중립국이다. 2014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무력으로 병합했을 때도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지 않았던 스위스가 자신들의 금기를 깨는 결정을 한 것이다. 그만큼 이번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번 전쟁은 유럽의 에너지 정책에도 일대 전환을 가져오고 있다. 이번 침공을 기점으로 지금까지 유럽이 추구해 왔던 친환경 에너지 정책 기조가 원전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급선회한 것이다. 벨기에는 애초에 2025년까지 원전 가동을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계기로 원전 가동을 10년 더 연장하기로 결정했다. 프랑스는 재선 도전에 나선 마크롱 대통령이 5년 전 자신의 공약을 뒤집고 '원전 유턴'을 선언하며 원전을 더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핀란드에서는 15년 만에 신규 원전이 가동에 들어갔으며, 영국도 기존 원전의 가동 연장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와 같은 변화는 러시아가 천연가스 및 원유 등의 에너지를 외교적으로 악용함에 따라 에너지 안보를 위해 그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유럽 각국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은 에너지 의존도가 지속된다면 향후 언제든지 러시아가 에너지 공급을 무기 삼아 유럽 사회를 압박할 수 있음을 간파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번 전쟁은 에너지 자급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면서 원전으로의 회귀를 가속화하고 있다.
더욱 우려할 만한 부분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금기시되어 오던 유럽 내에서의 분쟁에 대한 개입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유럽연합 회원국이지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는 가입하지 않은 스웨덴. 1939년 소련이 이웃나라 핀란드를 침공했을 때 무기를 지원한 이후 80년이 흐른 지금까지 국가 간 분쟁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그 후 처음으로 우크라이나에 군사 무기를 지원했다.
유럽연합도 사상 최초로 비회원국인 우크라이나에 무기 구입을 위한 자금 지원을 결정했다. 심지어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타국에 무기 지원을 결정했을 뿐만 아니라, 향후 스텔스 전투기와 같은 무기 구매에 1천억 유로(약 134조 원)를 투자하고 국방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2% 이상으로 증액하기로 결정했다. 이제 유럽 각국은 만약 우크라이나가 무너지면 다음 차례는 바로 자신들일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한 듯하다.
머지않아 전쟁은 끝나겠지만 이번 침공은 2차 세계대전 이후 평화 무드를 조성해 오던 유럽 국가들의 군사적 재무장을 위한 시작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역사적으로 볼 때, 군비 증강은 필연적으로 무력 충돌의 가능성을 잉태하기 때문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으로 인한 참상을 경험한 유럽 국가들에는 그 비극의 역사가 재연될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을 떨칠 수 없을 것이다. 전쟁이 가져온 유럽 내 탈(脫)원전 정책 및 분쟁에 대한 무(無)개입 원칙의 변화는 이렇게 다른 듯 같은 얼굴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크라이나에 하루속히 평화가 함께하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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