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치주의를 향한 불꽃'은 얼마 전 고인이 된 판사 윤성근의 칼럼과 강연 등을 엮은 책이다. 윤 판사가 병마와 사투를 벌이던 지난해 11월 사법연수원 동기인 강민구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편집했다. 디지털 상록수의 역량으로 이틀 만에 자료를 모아 전자책으로 완성했고, 이어 종이책도 발간되었다. 윤 판사의 쾌유를 기원하고, 그의 삶의 가치를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서문이 백지이다. '인사말'이라는 제목과 '2021. 11. 15. 윤성근'이라는 마지막 부분 사이의 두 쪽이 통째 비어 있다. 비어 있음이 더 큰 울림을 준다.
윤성근은 신사였다. 온화한 품성과 매력적인 풍모에, 콤비가 정말 잘 어울렸다. 그는 탁월한 법률가였다. 일종의 종교적 갈망과 열정으로 '법치주의를 향한 공감과 믿음의 확산'을 위해 재판하고, 글을 쓰며 강연을 했다. 나아가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한 교양인이었다. 다양한 가치를 존중하는 상대주의적 세계관을 가지고 삶을 향유했다.
그는 판사의 겸손을 강조했다. 듣는 것이 동서고금을 통해 재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보았다. 법관의 방식은 양보와 타협이 아니라 설득과 경청이라고 강조했다. 판사는 각자의 상식과 개인적 소신을 버리고, 보편적 상식과 직업적 양심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자신의 기준을 남에게 강요하는 것을 금기시했다. 법의 권위와 도덕적 우월성에 대한 판사의 독선을 경계했다. 종교인이 종교의 권위와 도덕성을 자신의 것이라 착각하기 쉽듯 판사도 법의 권위와 도덕성을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다고 보았다.
윤 판사는 다수결의 원칙이 지배하는 정치와 다수결에 친하지 않은 법치의 관계에 대해 고뇌했다. 어떤 헌법기관이든 선출 과정만을 내세워 민주적 정당성을 주장할 수 없다고 했다. 권력분립에 관한 헌법의 기본적 설계로부터 선거로 선출되지 아니한 법관의 민주적 정당성과 법원의 임무를 도출하였다. 정치 과정에서 소외된 소수 입장까지 포함해 균형 잡힌 시각에서 법을 해석‧적용하도록 함이 법관을 선거로 뽑지 않는 이유라고 밝혔다. 역설적으로 법원은 선출되지 않음으로써 민주적 정당성을 가진다고 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소수자가 될 수 있으며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 처할 수 있음을 직시했다. 아무도 소수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을 때, 다수로부터 배척당하고 아무도 편을 들어주지 않는 마지막 순간에도 법원은 여론의 비난을 무릅쓰고라도 소수자의 기본적 권리를 보호하여야 한다고 외쳤다. 그러면서 자신의 견해가 다수에 의해 관철된다고 생각될 때 잠시 멈춰서 목소리 없는 소수를 살펴보기 바라며, 소수자 보호의 역할을 맡고 있는 법원을 응원해 달라고 당부했다.
윤 판사의 글은 법관과 사법부에 대한 사랑이자, 우리 시대의 가장 깊이 있는 천착 중의 하나이다. 불완전한 재판제도에 있어 판사의 자세에 대한 전범이다. 재판과 사법부가 나아가야 할 나침판이다. 국민들이 법원을 아끼고 신뢰하여야 하는 이유에 대한 진심 어린 설득이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법원의 민주적 정당성에 대한 경전이다. 사법부 독립의 필요성에 대한 선언이다. 완전하지 아니한 다수결 제도를 기반으로 하는 선출직 정치권력이 만들어내는 소수자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법원의 보호 지침이다.
윤성근은 1959년 7월에 탄생, 2022년 1월에 귀천했다. 1982년 제24회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변호사로 일했다. 1998년부터 24년간 판사로 살았다. 보수나 진보라는 일반적 자기규정에서 해방되고, 개인적 신념이 재판에 끼어들지 못하도록 한 '자유인'이었다. 운명하기 얼마 전 '법치주의를 향한 불꽃' 인세 중 2천만 원을 기부하기도 하였다. 2만3천 일가량 이 세상에 머무르면서 좋은 판사의 가치를 경험하게 했고, 우리 사회를 더 행복하게 만들었다. 세월이 흘러 인간적인 모습이 멀어질수록 그의 생각과 정신의 향기는 더욱 맑아질 것이다. 그는 '향원익청'(香遠益淸)의 판사다.
댓글 많은 뉴스
국힘, '한동훈·가족 명의글' 1천68개 전수조사…"비방글은 12건 뿐"
사드 사태…굴중(屈中)·반미(反美) 끝판왕 文정권! [석민의News픽]
"죽지 않는다" 이재명…망나니 칼춤 예산·법안 [석민의News픽]
"이재명 외 대통령 후보 할 인물 없어…무죄 확신" 野 박수현 소신 발언
尹, 상승세 탄 국정지지율 50% 근접… 다시 결집하는 대구경북 민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