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캠퍼스에서 만난 귀여운 새끼 고양이가 계속 눈에 '밟힌다'(우리말의 이런 표현에 감탄이 나온다). 분명 주인 없는 길냥이일 텐데…. 그 새끼 길냥이는 나와의 첫 눈맞춤을 반사적으로 피했지만 이내 나를 졸졸 따라왔다. 요즘 고양이들이 강아지로 변신 중임에 틀림이 없다. '개냥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수중에 먹을 것은 고사하고 동전 하나 없는 상태였다. 성의가 있었더라면 달려가 냉큼 지갑을 찾아서 고양이용 간식이라도 사다 먹였겠지만, 한 번 먹이를 주면 주기적으로 줘야 할 텐데(지속할 수 없다면 아예 시작해선 안 된다 합리화하면서) 그럴 자신도 없고 나는 그냥 개냥이를 외면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자꾸 그 새끼 길냥이가 생각났다. 그 녀석 정말 귀여웠는데….
살아남는 방법은 다양하다. 타인을 내 뜻대로 움직이려는 전략에서 힌트를 얻어 보자. 이것은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D. Buss)가 제시한 것이다.
첫째, 회유한다. 상대에게 사랑스럽게 또는 다정하게 굴거나 징징거리며 앓는 소리를 한다든지 자신이 무능하고 약자임을 강조하며 납작 엎드려서 자신을 돕게 만들 수도 있다. 자존심 상할 수는 있지만 의외로 잘 먹힌다. 둘째, 지적으로 자극한다. 책임을 호소하거나 논리적으로 설명한다. 상대가 그렇게 하지 않으면 무책임하거나 지적이지 않은 사람임을 느껴 불편할 수 있어 소위 좀 배웠다 하는 사람에게 효과적이다.
셋째, 강압한다. 소리 지르고 심지어 완력을 쓴다. 때로 원하는 것을 얻어낼 때까지 상대를 투명인간 취급하기도 한다. 이것은 비인간적이지만 금방 효과가 나타난다. 대신 그 효과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넷째, 보상을 준다. 물질적인 것 말고도 즐거움이나 재미 같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도 보상이 된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한다는 말로 꾀기도 한다.
어떤가. 많은 방법이 있지 않은가. 물론 실전에서 이 방법이 성공하려면 고려해야 할 사항이 많다. 어쨌든 어떤 전략이 자주 성공하면 그것은 처세술이 된다. 엄연히 인간과 고양이는 다르지만 그 새끼 길냥이도 그 나름 살아남기 위해 어떤 전략(당연히 의도한 것은 아니고 생존을 위한 진화적 방편이겠지만)을 썼을 것 같은데….
코로나19 시국에 사람 구경 쉽지 않은 넓은 캠퍼스에서 어렵게 만난 냉정한 한 인간에게 새끼 길냥이는 뭐라도 얻어 먹으려고 '귀염'으로 어필해서 자신을 보살피게 만들고자 하였다. 비록 나는 그 귀염에 저항했지만. 작고 어리며 힘없는 새끼 고양이로서는 매력 어필 전략이 최선이었을 것이다.
이 전략은 위에서 언급한 회유책의 첫 번째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어린 개체가 본능적으로 써온 인기 있는 방법이다. 동물의 모든 어린 새끼는 특유의 귀여운 생김새를 지니고 있고 그것은 보는 이로 하여금 즐거움과 동시에 안쓰러움을 느끼게 하면서 기꺼이 자신을 보호하고 돌봐주게끔 만든다.
한 번 떠올려 보라. 뒤뚱뒤뚱 걷는 아기, 삐약거리는 노란 병아리, 새끼 수달, 귀 접힌 어린 강아지, 심지어 맹수인 사자나 호랑이의 새끼까지 세상의 웬만한 어린것들을 말이다. 귀염은 분명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의도하든 안 하든 귀염은 하나의 처세술이 되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을 내 뜻대로 움직일 수 있는 이 전략이 자주, 계속 성공하게 된다면 이 또한 일종의 권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새끼 길냥이가 권력을 가질 리 만무하지만 인간 세상에서는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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