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최경규의 행복학교] 인연의 끈을 놓지 않는 방법

최경규

겨울철 눈 내리는 날, 아이들은 손이 어는 줄도 모르고 열심히 눈을 굴려 눈사람을 만든다. 집에 있던 당근을 가져와 코를 만들고, 서랍 속 할아버지 모자로 눈사람이 추울까 봐 머리에 올려주기도 한다. 걸작을 만든 듯 친구들끼리 흐뭇한 미소로 노래도 부른다. 점심 먹으러 오라는 엄마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얼마후 돌아온 그곳, 눈사람은 사라지고 있었다. 따스한 햇볕이 눈사람을 녹이고 있었던 것이다. 눈사람의 인연(因緣),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눈사람이 온도라는 연(緣)이 안 맞아서 사라졌을 뿐인데도 아이들은 속상해하고 눈물까지 짓는다.

삶이란 길을 걷다 보면 많은 사람과 인연이라는 이름으로 만나고 헤어지게 된다. 어떤 인연은 스치는 바람처럼 잠시 머물다가 가지만, 또 다른 인연은 내 주위에 머물며 삶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인연, 사람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기도 하지만, 그 단어만으로도 로맨틱하지 않는가? 생각만으로도 마음이 따스해지는 인연이 있다면, 식지 않고 어떻게 오래 유지할 수 있을까? 큐피드의 사랑의 화살이 가슴에 꽂힌 순간 인연은 시작되고, 그 유통기한이 다할 무렵이면 그토록 애절했던 사랑도 기억 너머로 흘러가는 것일까?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비록 눈사람처럼 언젠가는 녹을지언정 참으로 아름다운 일. 사랑이라는 인연은 보통의 만남과는 다르다. 혹 아직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 내리지 못하는 당신이라면, 과연 그를 사랑하는가에 대한 진실한 답을 찾기란 어렵지 않다. 과연 그가 나에게 대체 불가한 존재인가 아니냐는 단순한 질문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받는 그 무엇을 다른 사람에게서도 받을 수 있다면, 그는 대체 가능한 존재이다. 마치 기계에 들어가는 부품이 호환되는 것처럼, 교체 가능한 인연은 보통의 인연이다. 하지만 그 사람의 아픔이 내 마음에 고스란히 전달된다면, 그의 기쁜 이야기보다 가슴 아픈 이야기에 당신의 마음이 더 저리다면 그를 사랑하는 것이고, 소중한 인연이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어감에 누구나 그 나름의 철학을 가지고 그 기준에 맞는 이를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자신이 정해놓은 프레임에서 벗어날 때면 화도 나고 가슴이 아파져 온다. 누군가를 처음에 사랑할 때 나오는 강력한 사랑의 물질은 뇌뿐만 아니라 온몸 전체에 퍼져있기에 어지간한 단점도 크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장점보다 단점이 보이기 시작하는 때가 있다. 바로 헤어짐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순간이다. 이때를 우리는 슬기롭게 이겨낼 지혜가 필요하다.

인간은 신이 아니기에, 절대 다른 이의 마음을 알 수 없다. 하지만 가까운 사람일수록, 자주 보는 사람일수록 우리는 상대에게 말하지도 않은 내 마음을 알아달라고 한다. 그러는 동안 설상가상(雪上加霜)으로 상대는 독심술의 대가인 것처럼 오히려 당신의 눈빛만으로 마음을 잘못 읽기 시작한다. 그리고 섭섭함을 가슴에 심는다. 마치 차가운 얼음 한 조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유리병의 모든 공기를 얼게 하듯이, 오해나 풀지 못한 시간은 미래에 깨지 못할 큰 얼음산을 만든다.

얼마 전 가까운 사람과의 오해 아닌 오해가 있었다. 솔직히 말해 아직 풀지 못한 일이기에 오해인지 아닌지조차 모른다. 하지만 며칠의 시간이 흐른 후에 그것이 중요하지 않음을 알았다.

생각지도 못한 어떤 일에 대하여 기대 밖의 행동을 하는 그가 무척이나 야속하고 원망스러웠다. 그래서 작은 오해의 불씨는 빨리 끄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평소와 같이 그에게 다가서고 싶었다. 그러나 나의 입장을 설명하고 오해를 풀기보다 다른 방법이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역지사지(易地思之), 그가 왜 그런 행동을 하였을까, 그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내 모습은 어떠하였는지를 생각해 보니, 나의 부족함을 찾을 수 있었다. 내가 만든 프레임 속에 있는 상대의 모습을 기대하였고, 잘못을 내 안에서 찾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를 향한 야속한 마음만을 가졌다. 내 마음에 얼어붙을 얼음조각을 상대에게 꺼내어 말하기 전에, 그 얼음이 누가 만든 것인지에 대한 내부정리가 앞서야 한다.

세상에는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은 절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상대의 말을 듣고 또 생각하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마치 인터넷에 번역기를 돌려 상대의 마음을 물리적으로 다 읽을 수는 없는 것처럼. 번역에는 수많은 오류와 미처 하지 못한 행간의 아쉬움과 사랑이 묻어 있기 때문이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말했다. 신이 인간에게 한 개의 혀와 두 개의 귀를 준 것은 말하는 것보다 타인의 말을 두 배 많이 들으라는 이유에서이다.

혹시라도 멀어지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조목조목 해석하듯이 물을 것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공백을 두고, 내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혹시라도 부끄러운 자신을 찾는다면 그와의 관계는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 세상 모든 인연을 잡을 수 없다고 생각한 채, 쉽게 놓아 버린다면, 어쩌면 당신은 소중한 이를 평생 곁에 둘 수 없을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이를 쉽게 떠나보내는 이들의 공통된 특징을 보면, 관계 위기의 순간에 잘못된 해결방식을 계속 반복한다는 특징이 있다. 카메룬의 속담에 '질문하는 자는 답을 피할 수 없다'라고 했다. 왜 사랑하는 이와의 인연이 쉽게 끊어지는지 돌아보고 슬기롭게 이어져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그 해답을 찾는 노력을 한다면 또 다른 큐피드의 화살을 애절하게 기다리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인연이라는 한 그루의 큰 나무는 하루아침에 심어지지 않는다. 그러하기에 대체 불가한 사랑하는 이가 있다면 그와의 시간을 소중히 생각하고 인연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한다. 이슬이 맺히기 위해서는 온도와 습도라는 연이 필요하지만, 우리의 인연. 어쩌면 공감이라는 작은 지혜와 다시 다가설 수 있는 용기가 있다면 그 연을 더 붙잡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최경규

행복학교 교장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