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칼럼] 대구시장의 세배(歲拜)

김해용 논설실장
김해용 논설실장

권영진 대구시장이 오는 6·1 지방선거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이로써 '대구시장 3선 불가 징크스'는 이번에도 깨지지 않게 됐다. 문희갑·조해녕·김범일 등 전임 시장들도 초선 또는 재선에만 성공했을 뿐이다.

8년 전 대구 정치판에 혜성처럼 등장한 권영진 후보를 기억한다. 권영진은 국회의원(서울 노원구을)과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역임했지만 대구에서는 지명도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권영진은 자신감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술회했다. "당내 후보 경선 일주일 전에 확신이 들었다. 나와 악수하는 당원들이 손을 쥐는 힘이 달라졌다. 인사하고 지나가다 돌아와 다시 인사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확신은 현실이 됐다. 2014년 7월 권영진은 민선 제6기 대구시장에 당선됐다.

기자가 아는 한 권영진은 열정적인 사람이다. 시장직에 대한 열정으로 굵직굵직한 업적을 다수 남겼다. 서대구역과 4차순환도로 개통, 대구신청사 건립, 로봇·자율주행 5+1신성장사업 육성 등을 꼽을 수 있다. 대구시 출자·출연 기관장 인사에서 자기 사람 심기 같은 잡음이나 부정부패 스캔들에 휩싸이지 않은 것도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다혈적 기질 때문에 정치인으로서 손해를 많이 봤다. 스스로 아니다 싶은 일은 지나치지 못했다. 악성 민원인이든, 시위 주동자이든, 시장실 방문자이든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았다. 설전도 불사했다. 비(非)경북고 출신 대구시장이라는 핸디캡도 알게 모르게 그를 따라다녔다. 인기는 좀처럼 오르지 않았다. 최근의 여론 지지율만 봐도 10~15%를 맴돌며 현직 시장으로서의 프리미엄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저조한 지지율이 결국 권 시장의 민선 첫 3선 대구시장 꿈을 가로막았다.

권 시장은 전임 시장들을 깍듯이 모셨다. 설날이면 전임 시장들 집을 찾아가 세배했다. 세 전임 시장의 태도는 조금씩 달랐다. 문희갑 전 시장은 막걸리 술상을 내놓고 권 시장을 몇 시간 동안 잡아뒀다. 시정에 대한 소회와 충고를 격정적으로 표현했다. 조해녕 전 시장은 차와 강정을 내놓고 주역 덕담 등을 나눴다. 시장 퇴임 후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김범일 전 시장은 권 시장의 세배를 매번 고사했다.

이제 두 달 뒤면 권 시장도 전임 대구시장이 된다. 세배를 열심히 다녔지만 정작 그는 세배를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선, 대구에 머무르게 될지가 불투명하다. 윤석열 정부에 입각을 한다면 서울로 거처를 옮길 수 있다. 대구에 머무른다고 해도 차기 시장으로부터 세배를 받을 가능성은 낮다. 대구시장 출사표를 던진 유력 주자들의 나이와 면면 등을 볼 때 세배 면담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임 대구시장에 대한 현직 대구시장의 세배 전통이 끊기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권 시장이 역점을 갖고 추진하는 현안과 숙원에 단절이 생겨서는 안 된다. 대구경북 통합신공항 건설, 대구취수원 이전, 제2대구의료원 건립 등등, 차기 시장은 권 시장이 완성하지 못한 일들을 마무리 지어야 한다. 대구의 위상도 높여야 한다. 대구가 일인당 국내총생산 수십 년째 꼴찌라는 도시 오명도 이제 벗겨내야 한다.

대구와 경북은 국민의힘 당내 경선이 사실상의 본선이다. 지역민들이 눈 부릅뜨고 대구시장 경선을 지켜봐야 할 이유다. 대구를 어떻게 바꾸겠다는 소명 의식도 없이 빈 선거구만 이리저리 넘보다가 대구시장 자리가 마침 난다니까 덤벼드는 정치인은 결단코 사절(謝絕)해야 한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