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내덕리 첩첩산중.
인적 드문 비탈밭에 한 무리 청춘이 떴습니다.
흙 반 돌 반, 자갈투성이 밭을 내려다보고 서야
세상에서 제일 큰 '나뭇잎' 이란 걸 알았습니다.
일하나 싶더니 봄볕에 벌러덩 드러누웠습니다.
일명 밭멍. 밭에서 멍 때리는 타임입니다.
구름만 두둥실, 귓가엔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뿐.
이랑마다 쑥쑥 내민 초록 싹에 벌써 뿌듯해집니다.
경적 소리 벨소리, 쳇바퀴 같았던 아스라한 일상들….
몸은 힘들어도 이리 행복한 적이 없었습니다.
잘나가던 도시 직장을 관두고 10여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김지현(35·밭멍 대표) 씨. 지난해 4월
9,917㎡(3천 평)에 골을 타고 '나뭇잎'을 그렸습니다.
"농약도 비료도 없이? 나뭇잎 밭? 농사가 장난이냐?"
엄마부터 뜯어말렸지만 다 생각이 있었습니다.
우거진 숲, 부엽토에서 흘러드는 빗물은 영양 덩어리.
한방울도 아까워 겹겹이 나뭇잎 고랑에 가뒀습니다.
진딧물, 배추흰나비가 득달같은 케일. 그 가장자리엔
이들을 내쫓는 식물 메리골드·바질로 싹 둘러, 지난해
보기 좋게 수확하자 그재서야 엄마는 무릅을 쳤습니다.
딸기 옆엔 응애를 쫓는 차이브를, 장마철이면
툭툭 갈라 터지는 토마토 곁엔 물을 쭉쭉 빠는 바질을,
무더위에 약한 땅콩은 그늘 좋은 가지가 도왔습니다.
긴 뿌리로 깊숙한 땅속 미네랄을 잘도 퍼 올리는
'광부식물' 톱풀은 땅심을 키우는데 그만이었습니다.
엽체·과체·식용 꽃 등 키우는 종류는 무려 70여 가지.
갖가지 작물이 한데 어우러지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식물도 재능 기부로 베풀고 어려우면 서로 도왔습니다.
꼬이는 해충은 천적인 익충과 새들을 불러들여, 스스로
위계질서를 만들며 상부상조의 '길드'를 완성했습니다.
"지구는 스스로 생존 능력을 지닌 살아있는 생명체".
1978년 가이아(GAIA) 이론을 설파한 영국 옥스퍼드대
제임스 러브록 교수는 2006년 <가이아의 복수>에서
한 세대 만에 '인간에 의한 자정 능력 상실'을 경고했습니다.
대량 생산을 쫓는 무차별 농법도 이와 무관치 않습니다.
자연의 순리를 이용한 생태 농법, 지속 가능한 농업,
퍼머컬처(Permacultuer)를 당차게 꿈꾸는 나뭇잎 밭.
기후위기에 자연의 힘을 믿고 결단한 게 옳았습니다.
젊은 여장부 곁엔 함께하는 청년이 다섯이나 있습니다.
나뭇잎 밭 입구 '밭멍' 깃발도 봄바람에 신이 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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