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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춘추] 연관검색어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등껍질 속으로 머리를 단숨에 집어넣고 싶은 밤이었다. 하루 종일 뭔가를 하고 돌아왔는데 아침과 같은 모습을 한 내가 거울 속에서 발을 씻고 있었다. 나는 아주 오랜 산 거북이처럼 등을 구부정하게 하고 서서는 '사는 게 뭐가 이리 힘들어'라며 라임(rhyme)이 영 엉성한 랩을 하듯이 장단을 넣어 중얼거렸다.

오늘도 가족들이 모든 잠든 후,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깨끗한 발을 한 나는 아주 사려깊은 가장인 양 느리고 조심스럽게 안방으로 걸어 들어갔다. 막내가 먹고 버려뒀을 귤껍질이 질깃, 밟힌다. 어두운 방에는 가느다란 세 개의 숨소리가 들썽거리고 있었다. 잠시 침대 귀퉁이에 걸터앉아 어둠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가, 앉은뱅이책상 앞으로 기어가 노트북을 펼친다.

습관처럼 인터넷에 접속해 마우스를 깔짝거려 보지만, 모니터 속의 세상은 마치 서북쪽 어디의 밤하늘처럼 공허하다. 실시간 인기 검색어가 모니터의 한쪽 구석에서 순위를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대체 나랑 무슨 상관이냐고.'

나는 무심하고 차갑게 말한다. 제법 크게 소리가 비어져 나왔는지 세 개의 숨소리 중 하나가 '흐음'하고 기척을 낸다. 딱히 보고 싶은 것도, 듣고 싶은 것도 없는 내가 꼭 어제의 나와 닮아 있다. 이번에는 취객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저급한 멜로디를 흉내 내 '사는 게 뭐가 이리 힘들어'라고 또다시 중얼거렸다.

사는 게 무엇인지? 어쩌고 하는 노래가 있지 않았나? 제목을 모르겠다. 가수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다. 검색창에 '사는 게'라고 친다. 가로로 길쭉한 검색창이 아래로 열리면서 연관검색어가 주르륵 흘러나온다.

사는 게 힘들다. 사는 게 재미없다. 사는 게 어렵다. 사는 게 뭔지. 사는 게 꽃 같네….

오늘 이 검색창의 결과를 따르자면 '삶'에 가장 긴밀한 관계를 가지는 단어는 '힘듦'이 된다. 마치 아픈 나무의 뿌리를 돌보듯 삶의 고통과 무료함, 난해함을 타개하기 위해 사람들은 그동안 이리도 똑같은 것을 '검색'했고 또 자신도 모르는 사이 공허한 디지털의 공간 속에 흔적을 남겼나 보다.

컴퓨터를 끄고 침대 한 구석으로 기어들었다. 나는 잊고 있었다는 듯 세 개의 숨소리가 남긴 여백에 내 호흡을 맞춘다. 비로소 온전히 '연관'된 네 개의 숨소리. 아마 나만큼 이들도 사는 것의 힘듦을 견디고 잠들었을 것이다. 위안이라고 하기에는 그 사실이 너무도 가슴 아파 부스스 숨소리들 쪽으로 돌아눕는다. 나는 겨울잠을 청하는 거북이처럼 기척 쪽으로 가서 몸을 비비적거렸다.

생각보다 따듯하다, 사는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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