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금호강의 봄

안윤하 시인

안윤하 시인
안윤하 시인

겨울바람이 황량하게 먼지를 일으키고 나는 쓸쓸하게 금호강둑에 올랐다. 20년 전 처음 만난 겨울 강은 철새들이 놀고 있고 풍광은 놀랍도록 아름다웠다. 무채색에 얹힌 철새들은 강을 어떤 계절보다 활기차게 생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왁자지껄한 새소리도 바람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했다. 지난 겨울은 백조무리가 찾아와 강이 더욱 다채로웠다. 하지만 자연은 생존을 위한 싸움판이다. 대구를 관통하는 금호강 생태계도 인간 사회만큼이나 약육강식의 구조가 복잡하다. 얽히고 설킨 먹이사슬은 생존의 명제 앞에 처절하다.

금호강에는 지난 늦가을 다양한 철새가 진격해왔다. 그들은 얼지 않는 강에서 겨울 동안 물고기들을 잡아 새끼를 키운다. 그들은 수초들 사이나 삼각주의 돌무덤을 뒤집고 물이끼를 헤집으며 잠수하여 꽁지를 하늘로 쳐든 채 숨어있는 먹이를 찾는다. 실제로 철새들이 오자 무리 지어 헤엄치던 물고기들은 숨어버렸다.

3월, 철새들은 점령군처럼 첨벙첨벙 뛰어다니며 충분히 체력을 보충했고 무리지어 떠날 채비를 시작했다. 백조는 자주 비행연습을 하고, 청둥오리는 귀향계획을 짜고, 논병아리도 동료들을 불러모은다. 뾰롱! 삐로롱! 그들은 왕버들의 연두빛이 선명해질 때 북쪽으로 날아갔다. 강에는 물결만 반짝이고. 강둑에 꽃들이 눈을 뜨기 시작한다.

겨울 동안 물고기들은 철새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비상을 걸었다. 지하벙커에 철없는 새끼들을 숨기고 부모들은 먹을 것을 구하러 비밀통로로 헤엄쳐 다녔다. 암호 '벚꽃 활짝'이 소리소문없이 강바닥을 포복하며 흘렀다. 종족보존의 본능으로 암호가 뜰 때까지 필사적으로 숨었다. 강둑에 꽃이 피자 '벚꽃 활짝!' 신호가 터졌다.

지금은 4월! 살아남은 잉어, 붕어, 피라미들까지 조인 가슴을 풀고 새끼들과 환호하며 물속을 활보한다. 비늘에 끼인 물때를 씻어내고, 암컷은 임신한 채 산란할 수초의 뿌리를 찾고 수컷은 짝을 찾아 암컷을 따라다닌다. 천적들이 가고 없는 강에 물고기들은 일상을 회복하고 있다.

앞으로 5월이면 수컷들이 암컷들을 차지하기 위해 지느러미로 힘차게 흙탕물을 일으키며 경쟁자들과 몸싸움하는 장관이 펼쳐질 것이다.

금호강 강둑은 지금 벚꽃이 환호를 터트린다. 사람들은 햇살교에서 겨우내 살아남은 잉어의 유영을 구경하며 봄기운을 즐기고 있다. 인간 세상도 동물의 세계와 다르지 않아서 점령자들을 막아내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전쟁이 끝나서 일상 회복하기를 나는 멀리서 기도한다.

농부가 밭으로 나갈 수 있기를! 치열하게 살아남아서 눈물을 닦고 힘차게 재건할 수 있기를! 우크라이나에 봄이 오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우크라이나 국민께 '벚꽃 활짝!' 암호를 보낸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