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지방자치 32년 무색한 수도권주의

이성칠 행정학박사

이성칠 행정학박사
이성칠 행정학박사

한때 읍·면·동사무소(현 주민센터)를 작은 청와대라고 생각했다. 당연히 청와대나 중앙정부는 갈 일도 없었고, 최일선 행정은 주민과 지역을 상대로 바로 실행이 되는 곳이었으니, 읍면동을 작은 청와대로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바야흐로 지방정부에 살림을 내준 지 32년째이니 한 세대가 바뀌어 흥부의 자식이 또 살림을 차려야 할 때다. 아직도 중앙정부는 대선이나 총선 때면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요란하지만, 정작 자치입법권, 자치행정권, 자치조직권, 자치재정권은 물론 자치인사권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 하물며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도 정당 공천제가 그대로 존속한다. 제상은 정당에서 다 차려 놓고 주인인 주민들에게는 제삿밥만 드시라는 격이다.

지방자치가 앞선 유럽의 버텀업(bottom-up) 방식의 사례는 우리의 톱다운(top-down) 방식에 비유하면 교과서나 토론용에 불과하다. 정작 놀부인 중앙정부가 살림을 내준 시혜성 비율이 고작 8대 2에서 왜 6대 4로 바뀌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이 없다.

특히 후보자의 인물론에서 지방행정이나 경영 등 경험이 없는 중앙 부처 출신이나 고위직과 연줄이 닿든지, 명문대 학자 출신 등이 유리하다는 것은 결국 혈연, 지연, 학연의 망령된 적폐가 그대로 재현되는 것이다.

기초자치의 정당 공천제는 자칫 말 잘하고 손 잘 비비는 동아줄을 가진 후보자면 만사 오케이라는 등식을 심어주는 셈이다.

지역 주민들은 풀뿌리민주주의를 통해 선출한 기초의원에서 광역의원, 단체장과 국회의원으로 진출하는, 잘 성숙된 일꾼으로 커가길 바라는데 결국 토양이 오염되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새살림 나간 흥부가 의심스러워 부단체장 인사권도 상급 기관이 쥐고 있고, 파킨슨의 법칙이 무색하리만큼 공무원 조직과 정원을 중앙이 쥐고 있다.

그나마 IMF 경제위기와 행정 혁신을 계기로 전면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지만, 강제적이고 급조되어 평소 신규 공무원을 10명 내외에서 4, 5년 동안 채용이 없다가 60~70명을 한꺼번에 발령 내어 조직이 피라미드가 아닌 호리병 형태의 기형을 만들었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수도권은 비수도권의 인구수를 넘어섰다. 3, 4공화국은 물론 6공화국 초반까지도 잘 지켜왔던 서울의 그린벨트는 무너진 지 오래다. 안타깝게도 세종청사와 혁신도시 건설 이후로 국토의 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은 요원한 실정이다.

최근 들어 경천동지할 일은 지방자치 32년과 맞물려 지난 20대 대선에서 보았지만, 수도권 일극 중심주의에 편승, 정당과 후보자는 당선 일념으로 수도권 중심의 놀부 심보가 재현되어 심히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한때 영호남을 나누더니, 교육마저 지방이 홀대받고, 더군다나 대통령 선거에서마저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갈라치기한 심보로 어찌 지방자치를 운운한단 말인가.

요즈음은 전국 어디를 가도 6차 농수산업이며,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더불어 드론, 3D프린팅, AI, VR, 메타버스 NFT, 블록체인, 암호화폐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농수축산업과 더불어 산업 기반의 특화로 글로벌 경쟁 체제를 선도하고 있다.

이제는 그동안 움켜쥐었던 자치권의 자물쇠를 확 열어주든지, 흥부에게 모든 자치 권한을 안심하고 맡겨주길 바랄 뿐이다. 어제도 오늘도 앞으로도 작은 청와대 지방정부는 주민을 하늘처럼 섬기면서 오순도순 잘 살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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