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종교칼럼] 다 가질 수는 없다

유재경 영남신학대 기독교 영성학 교수

유재경 교수
유재경 교수

봄이 반갑다. 봄은 우리 마음을 들썩이게 한다. 에밀리 디킨슨은 "3월아, 어서 들어와/ 널 보니 얼마나 기쁜지/ 전부터 너를 찾았었지/ 모자는 여기 내려놔/ 너 많이 걸었구나/ 숨에 차 헐떡거리네/ 3월아, 요새 어떻게 지내"라고 노래했다.

이 봄이 나의 일상도 바꿔 놓았다. 기껏해야 전공 관련 서적이나 읽고 논문을 뒤적였는데, 갑자기 시가 읽고 싶었다. 서가에 꽂혀 있던 시집 몇 권을 꺼냈다. 그것도 모자라 인터넷으로 시집 대여섯 권을 단박에 주문했다. 시는 천천히 음미하듯 읽어야 하는데,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것도 한꺼번에 몇 권을 순식간에 읽었다. 그제서야 내 깊은 곳이 그동안 무엇을 찾고 있었는지를 알아차렸다.

로버트 브라우닝의 시선을 읽어 내려가다 '안드레아 델 사르토'(Andrea del Sarto)라는 시에 온정신이 멈췄다. 시가 깊은 생각에 잠기게 했다. 시가 사유가 된 느낌이었다. 그것도 잠시, 시는 곧 내 몸 깊숙한 곳으로 밀고 들어왔다. 김수영은 "시는 온 몸으로, 바로 온 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라고 했던가.

안드레아 델 사르토는 르네상스 시대에 가장 재능 있는 화가였다. 미술사의 아버지, 조르조 바사리는 그를 피렌체의 가장 뛰어난 화가로 불렀다. 바사리는 '르네상스 미술가 평전'에서 화가를 부채(賦彩)와 데생, 창의력의 관점에서 평가했다. 그래서 그는 "미술가들의 전기를 읽노라면 수많은 화가 가운데 어떤 사람은 부채에 탁월하며, 어떤 사람은 데생에, 또 어떤 화가는 창의력에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어떤 위대한 화가도 이 세 가지 재능을 다 가질 수는 없었다. 그런데, 바사리는 안드레아에 대해 이 세 가지 재능을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화가였다고 적었다. 여기다 그는 한 문장을 더 추가했다. "그의 정신은 굳건하고 판단력은 심오하고 필적할 만한 이가 없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브라우닝은 위대한 재능의 소유자, 안드레아를 실패한 화가로 그렸다. 그의 재능은 레오나르도, 라파엘로, 미켈란젤로와 견줄 만했다. 그런 그를 왜 브라우닝은 실패한 화가, 모든 것을 가지고도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화가로 노래했던가. 브라우닝은 그런 안드레아의 일생을 이 한 구절에 녹여냈다. "나머지 다른 것은 소용없소. 왜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하겠소? 라파엘로가 무슨 아내가 있었고, 미켈란젤로에게 무슨 아내가 있소?"

안드레아는 미모의 과부 루크레치아와 결혼했고, 단지 예술이 요구하는 열정을 그 아름다운 아내, 루크레치아에게 바쳤을 뿐이다. 그래서 그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지만, 사랑과 위대한 화가라는 명성, 그 모두를 다 가질 수 없었다.

이러한 안드레아의 재능이 못내 아쉬워 브라우닝은 그 시의 끝자락을 이렇게 마무리했다. "여기 이승에서는 이것으로 만족해야 하오, 무엇을 더 바라겠소? 천국에서는, 어쩌면 새로운 기회가, 다시 한 번 기회가 올지도 모르오. 레오나르도, 라파엘로, 미켈란젤로, 그리고 내가 온통 그림을 그려 넣을."

얼마전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클래식 음악에 대한 사랑과 깊이에 놀란 적이 있다. 그는 마라톤, 수영, 재즈에서 클래식까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아 부러웠다. 그렇지만 그도 가지지 못한 것이 있을 것이다.

지금이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절기인 사순절 기간이다. 사순절은 예수님의 일생과 마지막 삶을 묵상하는 시간이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었지만 아무것도 가지지 않고 살아가셨다. 라일락을 키워내는 봄날에 우리는 결코 다 채울 수도, 다 가질 수도 없는 존재임을 되새겨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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