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터들은 쉬는 날에 뭘 할까?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를 어떻게 해소할까? 일하는 내내 미술작품을 쳐다보고 고민해야 하니 쉬는 날엔 친구와 만나 수다를 떨 수도, 정신없이 쇼핑에 빠질 수도, 아무도 없는 곳으로 훌쩍 떠나 산이나 바다를 바라보며 멍때리지 않을까.
"쉬는 날에는 미술관에 놀러가요. 국내든 해외든 여행 코스에 필수로, 아니 대부분의 여행 코스가 미술관과 박물관으로 채워져 있어요.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작품들을 감상하는 것이 진정한 쉼이자 힐링으로 다가옵니다. 공과 사의 경계가 없는 셈이지만, 바꿔 말하면 그만큼 제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높아요."
지난달 31일 대구보건대 인당뮤지엄에서 만난 최현정 학예실장에게서는 자신의 직업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는 "내가 기획하고 연출한 전시를 많은 사람에게 오픈했을 때, 그 희열이 너무 짜릿하다. 그게 중독적이어서 지금까지 이 일을 계속해온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나.
- 2007년 대구보건대 인당박물관 개관 때부터 전시를 담당해왔다. 미술사를 전공했고, 목가구전문박물관으로 시작했기에 유물사적 전시를 많이 맡았었다. 이후 자연스럽게 근대, 현대미술 전시도 기획하게 됐다.
2016년 경남 밀양에 보현박물관이 개관했고, 이듬해 인당박물관은 인당뮤지엄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금은 유물을 다루는 보현박물관과 주로 현대미술을 다루는 인당뮤지엄, 성격을 달리하는 이 두 곳의 전시를 함께 맡고 있다.
미술사와 박물관 교육을 전공했기에 현대미술 관련 전시를 기획하는 데 약점이 될 것이라고 여긴 적도 있지만, 다양한 분야를 다룰 수 있는 것이 지금은 강점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박물관은 유물을 두고 끊임없이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시도해야한다. 그러다보니 현대미술에도 스토리를 입혀 전시해보기도 한다. 작가의 현재 상태에 머물지 않고, 과거부터 현재의 얘기까지 맥락을 풀어내는 전시를 좋아한다.
처음에는 인력이 많지 않아 소장품 관리부터 교육 프로그램 개발, 전시 기획까지 모두 혼자 맡았다.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그만큼 많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인당의 성장이 나의 성장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지역은 물론 전국적으로도 대학 미술관이 흔치 않다. 대학 미술관 특성상, 전시 기획 시 초점을 두는 부분은.
- 재학생은 물론 주민들이 편하게 들러서 쉬어가는 공간이 되었으면 한다. 전시를 무겁게 생각하지 않도록 회화, 조각 등 다양한 작품을 끊임없이 보여주려 한다. 새로운 자극을 계속적으로 노출함으로써 미술을 쉽고 익숙하게 접하도록 하는 것이다. 전시 주제를 정할 때도 생활 속에 스며드는 전시가 되는 것을 주안점으로 둔다.
▶지난해 이배, 오트마 회얼 등 세계적 작가들의 초대전을 잇따라 기획했다. 이들을 과감하게 유치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지.
- 아무래도 미술에 접근하는 방식이 지역에 한정될 수 있다. 재학생들과 지역민들이 전국을 넘어 세계로 시야를 넓힐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그러한 전시들을 끌어오게 된 것 같다. 물론 학교의 적극적인 지원도 한몫했다.
특히 대구보건대는 보건기술에 특화한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다. 즉 사람을 상대하는 직업이 많기에, 인성을 키우는 데 뮤지엄으로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관람객들이 참고하면 좋을 인당뮤지엄 공간의 특징은.
- 인당뮤지엄은 각기 다른 크기의 전시실 5개와 로비로 구성돼있다. 헌데, 작가들이 참 좋아하면서도 어려워하는 공간이다.
우선 이 전시실들은 화이트 큐브(사각형의 정형화된 공간)가 아니라, 크기와 높낮이가 다 다르다. 로비의 경우 옆 계단을 오르내리거나 위층에서 바라보면서 작품을 다각도로 볼 수 있다. 내 눈높이에서만 보는 것과 전혀 다른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두번째 특징은 모든 전시실에 자연 채광이 들어와, 외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는 점이다. 시간별, 날씨별로 작품 느낌이 매시간 달라진다.
세번째 특징은 전시실 사이마다 통로가 길고 계단이 있다. 이 공간을 지나면서 작품을 보며 느꼈던 감정에 대해 사색하고 눈을 정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작품과 충분히 소통하고 감상하게되는 공간인 셈이다. 사실 그래서 작가들이 인당뮤지엄 전시를 더 어려워한다. 관람객들이 눈을 정화하고 다음 공간을 마주할 때, 또 새로운 감동을 줘야한다는 부담 때문이다.
▶대구보건대 학생들이 진행하는 '재학생 서포터즈 도슨트(작품 전문 해설가)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학생들에게 중점적으로 지도하는 부분은 무엇인지.
- 말 그대로 10명의 재학생들이 1년간 도슨트 트레이닝을 받고 직접 도슨트로 활동해보는 프로그램이다. 지역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첫 사례라고 알고 있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학생들을 직접 데리고 서울, 부산 등 전국에 있는 각기 다른 형태의 시설을 방문한다. 미술관, 박물관에서 도슨트의 해설을 직접 들어보고, 사람들이 어떻게 미술을 보고 즐기는 지 느낄 수 있게 했다.
학생들은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자신의 경험을 친구들에게 전달하기도 하는데, 그 파급력은 어느 홍보 효과보다도 강하다. 많은 학생들이 미술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방법 연구 중 하나다.
프로그램의 핵심은 학생들이 작업실에서 작가를 만나 인터뷰하고, 작품을 보며 각자 느낀 점을 도슨트 원고에 옮겨담는 것이다. 10명이 모두 다른 내용으로 표현해내는 점이 흥미롭다. 요즘 젊은층이 자기 생각을 글로 풀어내는 경험이 적은 편이어서 직접 글을 쓰고 표현해보는 기회를 갖도록 도움을 주고 싶었다.
▶전시 철학이 있다면.
- 예술 안에서는 고대·근대·현대, 박물관·미술관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통합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작품도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유물로 남을 것이고, 우리가 자라면서 사용했던 것들이 이미 박물관에 들어가 있기도 한다. 결국은 사람 사는 얘기로 귀결되는 예술을 통합해 연결 지을 수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일도 마찬가지다. 소장품을 직접 관리해봐야 이것들을 활용한 전시를 기획할 수 있고, 전시를 기획해보며 관람객들의 니즈를 알 수 있고, 전시를 활용해 교육 프로그램을 짜고 홍보도 한다. 이렇게 끊임없이 이어진 일들이 힘들면서도 재미있는 이유다. 계속 공부하고, 사회적 이슈를 읽고 유기적으로 통찰해서 전시로 보여주는 것이 학예사의 능력이라 생각한다.
▶앞으로의 계획 또는 소망은.
- 지금까지는 아날로그적 전시가 대부분이었지만 코로나19 이후 디지털로 많은 부분이 전환됐다. 전시를 보여주는 방식, 일에 접근하는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데 아직도 적응 중이다.
그래서 전시의 디지털화, 아카이빙에 대한 공부를 더 하고싶다. 지난해 처음 시도했던 VR전시도 자료가 디지털로 축적되니 우리는 물론, 작가들도 만족해했다. 후대에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을 디지털 아카이브를 어떻게 잘 보관하고 전달할 지 고민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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