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총학생회장 대신 비대위원장…"학생 복지 외면받아도 목소리 못 내"

코로나19, 취업난에 대학가 학생자치 실종
취업난에 ‘각자도생’… 시간·노력 쏟아붓기 쉽지 않아
비대위는 총학생회에 비해 조직 작고 대표성 약해… "한계 뚜렷"
선출 기준 현실화하고 학교 차원 활동 독려 방안 마련해야

경북대 총학생회가 2년간 구성되지 못하고 비상대책위원회로 운영 중인 4일 오후 총학생회 비대위 간부들이 제출한 사퇴서가 총학생회 게시판에 붙어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경북대 총학생회가 2년간 구성되지 못하고 비상대책위원회로 운영 중인 4일 오후 총학생회 비대위 간부들이 제출한 사퇴서가 총학생회 게시판에 붙어있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2022년 학생 자치를 이끌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한 경북대는 2년 연속 총학생회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게 됐다. 4일 총학생회를 꾸리지 못한 경북대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 중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2022년 학생 자치를 이끌 총학생회를 구성하지 못한 경북대는 2년 연속 총학생회장 자리를 공석으로 두게 됐다. 4일 총학생회를 꾸리지 못한 경북대는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운영 중이다. 정운철 기자 woon@imaeil.com

국내 상당수 대학에서 입후보자가 없거나 투표율 미달로 총학생회 부재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학생 자치의 실종이 대학과 대학생의 위기를 가속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선출 기준을 완화하고 학생 자치 활동을 독려할 수 있는 대학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학교생활 무관심 '코로나 학번'… 부담 크고 실익 없어

학생 자치 위기의 가장 큰 원인으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학교생활의 변화가 꼽힌다. 2년 가까이 이어진 비대면 수업과 사회적 거리두기로 선후배 간 교류나 학내 행사가 사실상 차단돼서다.

학생들의 소속감이 희미해지고 학생회의 역할 자체를 체험할 기회 자체도 사라졌다. 학과 내 행사조차 열리지 않는 상황에서 총학생회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겠냐는 반문이 나오는 이유다.

전욱진 대구가톨릭대 총학생회장은 "학교 축제 같은 대형 행사는커녕 비대면 수업이 이어진 지 3년이 다 돼가는 상황에서 학생들의 관심이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이른바 '코로나 학번'이 누적되면서 학교에 무관심한 분위기가 고착되고 학생 자치도 크게 약화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2020년 경북대 총학생회에서 재정 업무를 맡았던 A(23)씨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입학한 '코로나 학번'은 학교를 거의 나오지 않아 학교와 학생 분위기가 예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진다"면서 "자연스럽게 학교생활이나 학생회에 대한 관심도 떨어졌고 이런 부분이 굳어질 가능성도 크다"고 걱정했다.

그러면서 "총학생회장의 경우 수 년 간 총학생회 업무를 경험해야 무게감이 실리는데 총학생회 자체가 구성되지 않으면 총학생회가 구성돼도 존재감이 크게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만성화된 취업난 속에서 팍팍해진 대학 생활 역시 무관심을 심화시킨다는 분석이다.

대학 생활 전반을 취업을 위한 준비 과정으로 삼는 학생이 많아지면서 시간과 비용을 쏟아부어야 하는 학생 자치 활동은 '사치'에 가깝다는 것이다.

후보자 별로 편차가 있지만 각종 팸플릿과 현수막, 의상 등 선거용품 제작 및 홍보 활동 등 수백만원이 드는 것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당선되면 다행이지만 투표율이 저조해 낙선이라도 하면 고스란히 재정적인 부담으로 남는 셈이라 출마를 더욱 주저하게 만든다고 한다.

대구 한 대학 총학생회 임원은 "주 3회 각종 회의에 참석하고 관련 사무를 수행하느라 밤잠을 설칠 정도"라며 "스스로 학생들을 위해 봉사한다는 '내적 만족'이 클 뿐 실익은 찾기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총학생회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지인들을 만류해 본 경험도 있다. '학생들을 위해서 봉사하겠다'는 큰 책임감과 의지 없이는 힘든 자리"라고 털어놨다.

코로나19 장기화가 청년들의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계명대 성서캠퍼스에서 열린 교내 취업박람회를 찾은 학생들이 기업체가 제공하는 직무 정보 관련 토크콘서트에 참가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신문DB
코로나19 장기화가 청년들의 취업난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계명대 성서캠퍼스에서 열린 교내 취업박람회를 찾은 학생들이 기업체가 제공하는 직무 정보 관련 토크콘서트에 참가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매일신문DB

◆학생 자치 위기는 대학의 위기…"극복 힘 모아야"

총학생회의 부재는 학생들의 단합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든다는 측면에서 대학의 위기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임시기구인 비대위는 규모도 작고 대표성이 약해 총학생회에 비해 무게감이 크게 떨어진다. 거시적·장기적인 관점에서 학생회 활동을 할 이유나 여유가 없고 학생 복지 등 중요 이슈가 외면 받을 여지도 크다.

포항공대 학생처 관계자는 "학교에서 비대위에 좀 더 활발한 활동을 요청하기도 하지만 비대위는 최소한의 인원으로 최소한의 일만 하게 된다"며 "비대위 차원에서는 학생들의 의견을 규합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또한 "학교 입장에서도 고민이 크지만 학생 자치는 학생들의 영역이라는 점에서 대학이 깊숙이 관여하기도 조심스럽다. 일단 총학생회가 들어서야만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학생 자치를 실현하려면 총학생회장 선출 기준을 현실화하거나 활동을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지난해 총학생회 선거에서 투표율이 23.1%에 그쳤던 대구가톨릭대는 올해 최소 투표율 기준을 40%에서 35%로 완화해 총학생회 구성에 성공했다.

투표 기간 연장도 대안으로 꼽힌다. 서울대 총학생회는 올해 개표 성사 요건인 투표율 50%를 넘기고자 지난달 27~31일 연장 투표를 진행한 끝에 투표율 51.55%를 달성, 2년 4개월 여 만에 총학생회를 구성했다.

학교 차원에서 출마자를 지원하거나 학생들의 관심을 환기 시킬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경북대 학생지원팀 관계자는 "교칙 상 학생들의 선거에 학교에서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없지만 교내 최고 학생자치기구인 총학생회의 부재가 지속되는 것은 결코 좋지 않다"며 "학교에서도 학생들의 관심을 환기시키고 투표율을 높일 수 있는 방향을 찾으려 한다"고 말했다.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