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정댁, 그대가 마을을 떠나간 지가 벌써 4년째구려. 우리 마을에서 함께 글 깨치면서 재미있게 놀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살아있는 우리는 벌써 나이 앞 자리에 '8'자를 달았소.
우리 세 사람, 20살 안팎의 젊다 못해 어린 나이에 칠곡군 지천면 신4리에 시집와서 부모친척보다 더 오래 얼굴보면서 힘든 일 있으면 서로 의지하고 살아오며 세상에 둘도 없는 동무가 됐지요. 젊을 때 마을 도처에 열려있던 사과며, 복숭아며, 참외 등을 주인들 몰래 한두 개씩 따먹고 했을 때 정말 재미있었지요. 그런 추억을 쌓으며 60년 가까이 지내면서 재미있는 일 많이 했던 게 요새 계속 생각납니다.
20년 전인가, 30년 전인가 그때는 마을에서 자전거를 같이 사서 빨간 조끼 맞춰 입고 성주대교로 창평못으로 여기저기 놀러가서 솥단지 걸어놓고 맛있는 거 해 먹으면서 얼마나 재미있게 놀았소. 우리 세 사람이 정말 노래부르면서 놀기 좋아했었는데 특히 송정댁이 정말 흥이 많고 신나게 놀았더랬지요.
한글 배우기 시작할 때는 서로 얼마나 재미있게 살았는지, 글씨 쓴 모양새 보고 서로 놀리다가 선생님께 이르기도 하며 장난 많이 쳤지요. 송정댁이 한글 배우고 썼던 시도 기억나오. '나는 사남매를 두었는데 너는 삼십남매를 열었구나' 하면서 박을 여기저기 나눠준 일을 시로 썼었지요. 우리에게 글 가르쳐주시는 정우정 선생님이 "송정댁 어르신이 '동무들과 노래하고 공부하는게 제일 좋아. 그래서 일 주일 중에 화요일, 목요일만 기다려. 선생님이 나한테 비타민이야'라고 이야기하신 게 너무 기억에 남는다" 합니다.

송정댁 당신이 세상 떠난 날만 생각하면 우리 두 사람은 물론이고 마을 사람들 모두 가슴이 철렁한다오. 그날도 마을회관에서 같이 공부하고 노래부르고 놀다가 잘 헤어졌지요. 그런데 집에 도착하고 밖이 어둑해질 무렵에 갑자기 전화가 왔지요. "아이고, 송정댁이 마실 잠깐 나왔다가 돌아가셨답니다."라는 이웃의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어요.
몇 시간 전만 해도 같이 웃고 떠들다 헤어졌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니…. 잠깐 마실 나온 사이에 음주운전한 차에 치어서 결국 세상 떴다 하니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었다오. 나중에 사고 난 자리를 갔더니 당신이 쓰러졌던 자리 그대로 나락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한동안은 그 자리를 지나가기가 힘들었을 정도로 마음이 아팠소.
가끔 잘 때 되면 송정댁과 함께 여기저기 놀러다니던 생각이 많이 납니다. 언젠가는 학동댁이 진달래를 한아름 꺾어와서는 물병에 꽂아놨었지요. 그 때 송정댁이 예쁘다며 같이 사진찍고 했었는데, 이제는 진달래 꺾어서 갖고 와도 같이 사진찍을 동무 한 사람이 사라졌구만요.
그래서 그런가 송정댁 떠나가고 나서는 노래 가사도 달리 들립디다. '찔레꽃' 노래를 2절까지 부르다보면 '작년 봄에 모여 앉아 찍은 사진을 하염없이 바라보니 즐거운 시절아'라는 대목이 있지요. 이 구절만 나오면 같이 한글 배우던 마을 아낙네들이 송정댁 생각에 너도나도 먹먹해지곤 했었지요.
고된 농사일 하다가도 시간 나면 자전거타고 여기저기 유람 다니고, 한글 배우면서 시도 써 보고, 그러다가 노래 부르고 웃고 울고 했던 게 잘 때 되면 가끔씩 기억납니다. 동네에 시집와서 서로 의지하고 잘 살았는데 너무 빨리 갔소. 진달래도 피고 찔레꽃도 피는 봄이 되니 송정댁, 당신이 더욱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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