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비익조

김아가다 수필가(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아가다 수필가(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아가다 수필가(2021 매일시니어문학상 대상 수상자)

비익조는 눈이 하나, 날개도 하나라고 한다. 불완전한 개체가 서로 만나야 온전한 하나가 된다는 슬픈 운명을 가진 전설의 새다. 반쪽을 찾지 못하면 영원히 날 수 없는 비익조. 인생길 험한 세상 하나가 되어야만 살 수 있는 부부도 비익조의 운명이리라.

휠체어가 쌩쌩 잘도 굴러간다. 조마조마해서 바라보는데 사람들 사이를 잘도 빠져나간다. 여자를 태우고 달리는 남자의 표정이 천진한 개구쟁이 같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여자 역시 치아를 드러내며 활짝 웃고 있다. 저렇게도 좋을까.

남자의 셔츠 양 소매는 텅 비어 덜렁거린다. 청년 시절 감전 사고로 팔 두 개를 다 잃어버렸단다. 배에다 휠체어를 바투 붙이고 두 발로 번갈아 이쪽저쪽으로 밀고 있는 남자의 모습은 사뭇 진지하다. 그의 발은 엇박자 없이 재바르다. 마치 축구선수가 공을 '드리블'하는 모양새다.

여자는 뇌경색으로 반신불수가 된 몸에 합병증으로 신장이 망가져서 입원 중이다. 손이 없는 남자가 무슨 병구완을 할까마는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아내에겐 힘이 되는 모양이다. 남자는 말하고 걷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먹고 입고 배설하는 가장 기본적인 일도 혼자서는 할 수 없다.

프란치스코와 로즈메리는 두 사람의 세례명이다. 이름만 들으면 유럽의 귀족 청년과 그의 연인 같다. 결혼 3년 차인 그들은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 주민이었다. 여느 부부처럼 첫눈에 반해 축복 속에 결혼한 것은 아니었다. 여자가 건강을 잃자 함께 살던 배우자가 떠나버렸고, 남자의 의식주를 보살피던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둘은 살기 위해서 서로가 필요했다. 더 잃을 것도, 버릴 것도 없는 종착역에서 만난 인연이었다.

오십 중반을 넘은 나이에 혼인한 부부는 국가에서 지급하는 생활보조금으로 살아간다. 바지런한 남자는 활동 도우미를 통해 옷 장사도 하고 옆집에 사는 암 환자까지 돌봐 주고 있다. 프란치스코 성인처럼 빈자(貧者)의 대부가 되어 살고 싶지만, 자신은 능력이 없다면서 옅은 연기 같은 한숨을 뱉어낸다. 아내 로즈메리는 남편의 하는 일을 말없이 바라보며 응원해주고 있다.

남자의 발은 항상 바쁘다. 그가 휠체어를 밀면 아내의 성한 팔은 바퀴를 돌리며 남편의 힘을 덜어주고 있다. 남자가 휴게소에서 커피 주문을 하면 아내가 계산한다. 남자의 입에는 뚜껑 열린 카푸치노가 물려 있고 여자의 손에는 빨대 꽂힌 카페라테가 들려 있다. 천생연분이 돌고 돌아 이제야 만난 것일까. 봄볕 바라기를 하면서 하나가 된 반쪽 둘이 쉼터에 앉아 커피를 즐기고 있는 모습은 싱그럽기까지 하다.

두 사람을 보면서 나는 전설의 새 비익조를 생각한다. 비록 장애를 지니고 있지만, 이들의 모습을 아름답다고 표현하면 잘못일까. 바라만 보아도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는 한 쌍이다. 나는 잠시 그들의 모습에서 또다시 비익조의 비상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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