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 정체 밝힌 ‘대구 키다리 아저씨’ 나눔의 선한 영향력 퍼지길

신분을 숨기고 선행을 이어 오던 '대구 키다리 아저씨'가 최근 스스로를 드러냈다. "10년간 10억 원을 기부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 있었다. 2012년부터 대구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0억3천500여만 원을 익명으로 기부해 온 박무근 씨다. 박 씨 부부가 지금까지 기부한 금액은 모두 합쳐 20억 원이 넘는다고 한다. 기부 이력을 드러낸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부 문화를 좀 더 확산시키고 싶어 신분 공개를 마음먹었다고 한다.

그는 소위 '있는 집' 자식이 아니었다. 1948년생인 그는 초등학교를 간신히 졸업하고 중학교도 잠시 다니다 중퇴했다고 한다. 가난해서였다. 1960년대 생사를 오가는 보릿고개를 넘은 세대다. 제 몸 하나 건사하는 게 일생일대의 목표였을 것이다. 그럼에도 부(富)의 과실을 더불어 사는 사회로 돌린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장기간 기부가 우리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그는 "죽으면서 돈 가져가는 거 아니더라. 돈이 많고 적음이 아니라 남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했다.

나눔의 품격을 세우는 메시지다. 이런 마음가짐이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떠받치는 기둥이다. 오랜 기간 기부를 하면서도 그는 정체를 숨겼다. 선의가 왜곡될까 걱정했다고 한다. 자신보다 더 귀한 나눔을 하는 이들이 많은데 과시하고 싶지 않았다는 거였다.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다. 선행에 들어서는 길은 여러 곳에 열려 있다. 꼭 돈이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을 나누려 하면 어디서든 의미 있게 쓰일 수 있다. 지금도 무료 급식소나 야간학교에는 봉사자들이 귀하다.

기부는 건강한 습관이라고 한다. 기부를 전염성 강한 나눔으로 칭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나처럼 부족한 사람도 기부를 해왔다는 걸 알게 되면 더 많은 분들이 동참해 줄 것 같았다. 키다리 아저씨는 사라졌지만 기부는 이어진다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은 깊은 울림으로 다가온다. 선한 영향력이 바이러스처럼 퍼져 나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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