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가 호평을 받고 있다. 주인공 '선자'의 이민사를 가족 대서사시로 엮은 미국식 드라마다. 한국 여자의 인내력과 희생으로 이룬 가족의 강건한 견인력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근대역사에 따른 집단적 삶을 담고 있지는 않다. 평론가들은 '선자'는 살아냈다고 정평한다. 삶이 아픔의 연속인 시대 상황에서 '살았다'와 '살아 냈다'는 의미의 간극은 매우 크다. '선자'가 한국 땅에서 살았다면 어떤 삶을 살았을까? 근현대사를 통과하며 국민의 아픔이 가장 컸던 세대인 1940년경 출생한 70~80대의 삶을 추적해보자.
그들은 일제가 일으킨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생존을 위한 모든 재화를 빼앗긴 채 극한의 조건에서 살아남았다. 그리고 해방과 분단과 개국의 혼란 속에서 흙바닥을 긁으며 살았고 북한이 일으킨 전쟁이 모든 삶을 홍수처럼 휩쓸어 가버렸다. 부모들은 자식들을 굶기지 않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릴 수 없었다. 파친코의 '선자' 대신 한국의 선자로 나의 둘째 언니를 소개해 본다.
일제강점기 말에 언니는 홍역으로 한쪽 눈이 실명된 채 목숨은 건졌다. 어린 시절 해방과 6.25 전쟁을 겪으며 초등학교를 겨우 졸업하자 고사리손으로 섬유공장에 다녔다. 설상가상, 아버지의 사망으로 18세에 양장기술을 배워 소녀 가장이 됐다. 그녀는 다섯 동생의 생존을 위해 재봉틀에 몸을 묶어 늘 다리가 부어있었고 배는 고팠고 잠은 부족했다. 그녀는 연이은 사회 혼란에도 희생으로 가족공동체의 의미를 배가한 세대이며 산업화의 밑바닥과 민주화의 시발선에서 묵묵하게 살아낸 세대다.
그녀는 아들 셋을 최고의 학력으로 키웠으나 자신은 저학력의 열등감으로 평생 기죽어있었다. 칠순일 때 중·고등학교를 입학하고 지난 2월, 대학을 졸업한 것이 팔순이었다. 안타깝게도 코로나 펜데믹이 꿈에 그리던 졸업식을 가로막았다. 팔순 축하 인사도 전화로 오고 갔을 뿐이다. 그녀는 섭섭하지도 서럽지도 않다고 한다. 팔순 잔치에 대한 부정적 분위기에 밀려 눈치를 본다. 언니는 자신을 위한 이벤트에는 쑥스러워하며 극구 사양한다. 자신이 주목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사양해야 한다고 세뇌됐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속마음으로야 섭섭하지 않으랴.
코로나 '엔데믹'이 되면 팔순의 언니에게 작은 시상식을 해야겠다.
"상장, 귀하는 가장 암울한 시기에 태어나 희생과 절약과 근면으로 자랑스러운 가족을 만들었으며 만학으로 대학교를 졸업하여 자신의 존엄을 지켰으며 두 번의 전쟁을 극복하며 잘살아낸 팔순을 축하하며 국가의 번영과 국격을 높이기 위해 공헌하심에 상장과 상금을 수여함."
팔순 되시는 모든 분께 여생을 불타는 노을로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